대화의 기본 원리 > 흐름 잇기 > 샌 대화 본론 복귀 · 중급
이번 회차 학습 목표: 딴 길로 샌 대화를 본론으로 되돌릴 때 왜 "본론으로 가시죠"가 역효과를 내는지 이해하고, 상대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뽑아 그대로 안건에 태우는 법을 익힙니다. Ep 014가 끊긴 대화를 다음 화제로 잇는 법이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너무 멀리 흘러간 대화를 제자리로 데려오는 법으로 "흐름 잇기"를 보완합니다.
이번 회차의 한 문장
오늘부터 회의가 딴 길로 새면, 이야기를 끊는 대신 그 이야기의 교훈을 한 줄로 붙잡아 오늘의 안건으로 갈아태우게 됩니다.
"내가 2011년에 첫 제품 런칭할 때는 말이야, 그때는 SNS도 없었어."
월요일 오전 10시 20분, 생활용품 회사 마케팅팀 회의실. 쉰세 살 변정호 팀장의 이야기는 벌써 18분째였습니다. 화이트보드에는 "신제품 런칭일 확정"이라는 오늘의 유일한 안건이 적혀 있었지만, 회의는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서른네 살 주예솔 과장은 노트북 화면 구석의 시계를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11시에는 다른 팀과의 회의가 잡혀 있었습니다.
"본론으로 가시죠" 한마디에,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났다
딴 길로 샌 윗사람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끊으면, 대화는 본론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아예 닫힙니다. 끊긴 이야기와 함께 말한 사람의 체면도 끊기기 때문입니다.
팀장의 이야기는 점점 방향을 틀었습니다. 옛날 런칭 무용담에서 "요즘은 예산도 적고, 애들도 야근을 안 하려고 하고"로 넘어가자, 다른 팀원 둘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니까요, 요즘은 결재도 세 단계나 거치고요." 회의실의 공기가 한숨 쪽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예솔 과장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주예솔: 팀장님, 죄송한데 시간이 얼마 없어서요. 본론으로 가시죠. 런칭일 정해야 해서요.
변정호: (잠시 말을 멈추고 펜을 내려놓는다) …그래, 내 얘기가 길었네.
주예솔: 저희 안은 11월 둘째 주랑 셋째 주 두 가지인데요.
변정호: 알아서들 정리해서 올려. 난 이따 본부장 보고 들어가야 하니까.
팀장은 수첩을 챙겨 먼저 일어났습니다. 남은 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 흩어졌습니다. 예솔 과장이 밤새 비교표를 만든 두 가지 안은 화면에 한 번 떴다가 그대로 꺼졌습니다.
다음 날 날아온 한 줄 메일, 결정권은 이미 회의실을 떠나 있었다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회의실 밖에서, 가장 적은 정보를 가진 채로 누군가 혼자 결정하게 됩니다.
화요일 아침, 팀 전체에 팀장의 메일이 왔습니다. "신제품 런칭일은 11월 첫째 주로 확정. 본부장님과 협의 완료." 예솔 과장의 두 가지 안 어디에도 없던 날짜였습니다. 첫째 주는 물류 입고 일정과 겹쳐 재고가 부족할 위험이 큰 주였습니다. 비교표 세 번째 줄에 빨간 글씨로 적어 둔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예솔 과장은 억울했습니다. 준비는 누구보다 철저했고, 시간을 아끼려 용기 내서 말도 꺼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회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고, 결정은 팀장 혼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본론으로 가시죠"라는 한마디가, 본론을 회의실 밖으로 밀어낸 셈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회의에도 이런 순간이 있으셨을 겁니다. 윗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질 때 참자니 시간이 없고, 끊자니 분위기가 얼어붙는 순간. 그렇다면 기다리는 것도, 끊는 것도 답이 아니라면 무엇이 남을까요? 회의 수백 건을 녹화해 한 마디씩 뜯어본 연구자들이 그 실마리를 남겨 두었습니다.
녹화된 회의 92건이 보여 준 것, 한탄 한 마디가 성과를 끌어내렸다
회의의 성패는 안건의 무게보다 회의 중 오가는 말의 종류에 더 크게 좌우됐습니다. 특히 불평과 비난 같은 말은 문제 해결형 말이 주는 긍정적 효과보다 더 큰 부정적 효과를 냈습니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공대의 시모네 카우펠트와 날레 레만빌렌브로크는 2012년, 실제 기업 팀의 정기 회의 92건을 녹화하고 모든 발언을 유형별로 분류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는 말이 많았던 팀은 회의 만족도와 생산성이 높았고, 그 효과는 2년 반 뒤의 조직 성과와도 이어져 있었습니다. 반대로 남을 비판하거나 불평하는 말은 이 모든 결과와 부정적으로 이어졌고, 그 부정적 영향은 좋은 말의 긍정적 영향보다 더 컸습니다.
기능적 상호작용(functional interaction) — 회의의 목표 달성을 돕는 말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내고 누가 언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발언이 여기에 속합니다. 회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 역할을 합니다. 예솔 과장이 준비한 두 가지 안과 비교표는 바로 이런 말을 끌어내기 위한 재료였습니다.
역기능적 상호작용(dysfunctional interaction) — 회의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말들로, 불평, 남 탓, 주제와 무관한 이탈 등이 포함됩니다. 연구에서는 이 말들의 해로움이 기능적인 말의 이로움보다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요즘은 예산도 적고"로 시작된 한탄은, 팀장의 옛날 이야기를 이 역기능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이 연구는 한 가지 중요한 방향을 알려 줍니다. 회의를 살리려면 나쁜 말을 막는 것만큼이나, 좋은 말이 나올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만드는 말에는 따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한탄은 한탄을 부르고, 방향을 가리키는 말은 방향을 부른다
회의에서 한 사람의 불평은 다른 사람의 불평을 끌어내며 꼬리를 물고, 그 꼬리는 팀 전체의 기분을 가라앉힙니다. 반대로 "그럼 뭘 바꿔 볼까"라는 말도 같은 방식으로 꼬리를 물며 분위기를 끌어올립니다.
레만빌렌브로크 연구팀은 2011년, 52건의 업무 회의를 분석해 말이 이어지는 순서를 추적했습니다. 불평에 불평이 이어지는 흐름이 잦은 팀일수록 회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무기력했고, 변화에 관심을 보이는 말에 같은 말이 이어지는 팀일수록 분위기가 활기찼습니다.
불평 순환(complaining cycle) — 한 사람의 불평이 다른 사람의 동조 불평을 부르고, 그것이 다시 또 다른 불평을 부르며 이어지는 대화 패턴입니다.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 굴러가기 때문에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팀장의 "요즘은 예산도" 한마디에 "결재도 세 단계"가 따라 나온 장면이 바로 이 순환의 시작이었습니다.
변화 관심 순환(interest-in-change cycle) — 한 사람이 무언가를 바꿔 보자는 관심을 보이면, 다른 사람도 같은 방향의 말로 받아 이어지는 대화 패턴입니다. 불평 순환과 똑같이 꼬리를 물지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이 순환을 먼저 여는 한 문장이, 가라앉던 회의의 방향을 바꾸는 손잡이가 됩니다.
정서 전염(emotional contagion) — 한 사람의 감정이 말투, 표정, 말의 내용을 타고 주변 사람에게 옮아가는 현상입니다. 연구팀은 회의 속 말의 순서가 이 전염을 통해 팀 전체의 기분을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예솔 과장이 느낀 회의실의 가라앉은 공기는 기분 탓이 아니라 이 전염의 결과였습니다.
회의의 방향을 정하는 건 직급이 아니라, 절차를 말하는 한 문장이었다
회의의 흐름을 구조화하는 말은 회의를 이끄는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참석자 누구든 그런 말을 꺼낼 수 있고, 그 말이 나온 뒤에는 회의가 실제로 제자리를 찾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레만빌렌브로크, 조지프 앨런, 카우펠트는 2013년, 19개 조직의 회의 59건을 분석해 회의를 구조화하는 말이 어떤 흐름을 만드는지 추적했습니다. 목표를 상기시키거나 시간을 짚는 말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어서 책임과 일정에 대한 적극적인 말을 끌어냈으며,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불평하는 말을 줄였습니다. 이런 역할을 팀원 여럿이 나눠 맡은 팀일수록 회의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절차적 커뮤니케이션(procedural communication) — 회의의 목표 달성을 돕기 위해 논의를 구조화하는 말입니다. "오늘 정할 건 이거예요", "지금 10분 남았어요", "정리하면 이렇네요" 같은 말이 여기에 속합니다. 예솔 과장의 "본론으로 가시죠"도 절차적 말이 되려 했지만, 팀장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형태로 나오는 바람에 지지 대신 반발을 샀습니다.
결국 문제는 절차를 말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 절차의 말이 어떤 모양으로 나왔느냐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개념이 더 필요합니다. 한국의 회의실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팀장이 지키고 싶었던 건 이야기가 아니라, 체면이었다
사람은 대화 속에서 두 가지 체면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인정받고 싶은 체면과, 간섭받고 싶지 않은 체면. 이야기를 끊는 말은 이 두 체면을 동시에 건드립니다.
언어학자 퍼넬러피 브라운과 스티븐 레빈슨은 1987년 저서에서, 사람들이 대화에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말의 모양을 어떻게 바꾸는지 정리했습니다. 이 틀로 보면, "본론으로 가시죠"는 내용이 옳더라도 팀장의 체면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말이었습니다.
긍정적 체면(positive face) —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내 생각과 경험이 가치 있게 여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경력이 긴 윗사람일수록 자신의 경험이 존중받는 것에 민감할 수 있습니다. 팀장의 옛날 런칭 이야기는, 사실 "내 경험이 이 결정에 쓸모 있다"는 인정을 구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부정적 체면(negative face) — 다른 사람에게 간섭받거나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기서 "부정적"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침해받지 않고 싶다"는 뜻입니다. "본론으로 가시죠"는 팀장이 스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기회를 빼앗아 이 체면까지 건드렸습니다.
체면 위협 행위(face-threatening act) — 상대의 긍정적 체면이나 부정적 체면을 해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입니다. 말을 끊기, 반박하기, 요구하기 등이 대표적이며, 권력 차이가 클수록 그 무게가 커진다고 설명됩니다. 사원이나 과장이 팀장의 말을 끊는 순간은, 같은 말이라도 동료끼리보다 훨씬 무거운 체면 위협이 됩니다.
일주일 뒤 같은 회의실, 옛날 이야기가 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샌 이야기를 끊지 않고 그 이야기의 교훈을 붙잡아 안건에 연결하면, 윗사람의 체면은 지켜지고 회의는 본론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연결을 설계한 사람이 결정의 방향을 쥐게 됩니다.
런칭일은 결국 물류 문제로 다시 논의해야 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같은 회의실. 예솔 과장은 이번엔 화이트보드에 안건과 함께 "11:00 종료"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팀장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변정호: 그때 2011년에도 말이야, 날짜를 너무 급하게 잡았다가 매장에 물건이 안 깔려서 한 달을 날렸어. 그때 본부장이 얼마나…
주예솔: 팀장님, 그 얘기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런칭은 날짜보다 매장에 물건이 먼저 깔려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거죠?
변정호: 그렇지. 그게 제일 중요해.
주예솔: 그 기준으로 보면요, 첫째 주는 물류 입고랑 겹쳐서 재고가 60% 선이고, 셋째 주는 100% 깔린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어요. 팀장님 기준이면 어느 쪽이 맞을까요?
변정호: (비교표를 들여다보며) 60%면 그때랑 똑같네. 셋째 주로 가야겠다.
주예솔: 그럼 셋째 주로 확정하고, 본부장님 보고 자료는 제가 오늘 중으로 만들겠습니다. 2011년 얘기는 점심 때 더 듣고 싶어요. 그때 한 달을 어떻게 만회하셨는지 궁금해서요.
팀장은 웃으며 "그래, 점심 때 얘기해 줄게"라고 했습니다. 회의는 10시 42분에 끝났습니다. 런칭일은 셋째 주로 확정됐고, 본부장 보고 자료를 쓰는 사람은 예솔 과장이 되었습니다.
지난주 예솔 과장은 이야기를 끊어 회의를 되돌리려 했지만, 결정은 회의실 밖 팀장 혼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팀장의 이야기를 결정의 기준으로 바꿔 불러왔고, 그 기준 위에 자기가 준비한 비교표를 올려놓았습니다. 결정을 내린 사람은 팀장이었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선택지 중에서 고를지는 예솔 과장이 설계한 겁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이 방식을 "교훈 환승법"이라 부르겠습니다. 딴 길로 샌 이야기에서 내리지 말고, 그 이야기의 교훈이라는 정거장에서 오늘의 안건으로 갈아타는 겁니다. Ep 014의 경첩 전환법이 앞 화제의 단어를 밟고 옆 화제로 건너가는 법이었다면, 교훈 환승법은 멀리 간 이야기의 뜻을 붙잡고 원래 목적지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핵심 포인트
샌 이야기를 끊으면 체면이 다치고 결정은 회의실 밖으로 나갑니다. 이야기의 교훈을 한 줄로 이름 붙이고, 그 교훈을 오늘 안건의 기준으로 삼아 질문하고, 남은 이야기는 다른 시간으로 초대하세요. 기준을 제시한 사람이 결정의 방향을 쥡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교훈을 억지로 비틀어 내가 원하는 결론에 끼워 맞추면 안 됩니다. 팀장의 이야기가 실제로 첫째 주를 지지하는 내용이었다면, 그 교훈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내 결론의 도구로만 쓰면 한두 번은 통해도 곧 "말을 교묘하게 돌린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또 "점심 때 더 듣고 싶어요"는 진심일 때만 쓰세요. 지키지 않을 초대는 다음 회의에서 더 긴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 세 문장을 놓치면, 결정은 오늘도 회의실 밖에서 내려집니다
교훈 환승법은 세 문장으로 연습할 수 있습니다. 교훈에 이름을 붙이고, 그 교훈을 안건에 태우고, 남은 이야기를 다른 시간으로 옮기는 순서입니다.
이야기의 교훈에 이름 붙이기
"그 얘기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가 핵심이라는 거죠?" 이야기를 끊는 대신 그 이야기가 말하려는 교훈을 한 줄로 정리해 확인받습니다. 상대는 자기 경험이 인정받았다고 느끼고, 대화의 초점은 과거의 사건에서 지금 쓸 수 있는 원칙으로 옮겨 옵니다. 거래처 담당자의 긴 업계 이야기라면 "결국 납기를 한 번도 어기지 않는 게 신뢰의 전부라는 말씀이시죠?", 시어머니의 옛날 살림 이야기라면 "결국 명절 음식은 양보다 미리 나눠 준비하는 게 핵심이라는 거죠?"로 쓸 수 있습니다.
그 교훈을 오늘 안건의 기준으로 태우기
"그 기준으로 보면, 오늘 정할 △△는 어느 쪽이 맞을까요?" 확인받은 교훈을 곧바로 안건의 판단 기준으로 씁니다. 준비해 둔 선택지를 그 기준 위에 올려놓으면, 상대는 자기 원칙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고 회의는 결론으로 향합니다. 거래처 미팅이라면 "그 기준이면 이번 발주는 분할 납품이 맞을까요, 일괄 납품이 맞을까요?", 가족회의라면 "그렇게 보면 올해는 장보기를 누가 먼저 맡는 게 좋을까요?"로 쓸 수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다른 시간으로 초대하기
"그럼 ○○는 이렇게 정하고, 아까 그 얘기는 □□ 때 더 듣고 싶어요." 결정을 한 문장으로 확정하면서, 끊긴 이야기를 버리지 않고 다른 시간으로 옮겨 줍니다. 상대는 이야기를 빼앗긴 게 아니라 연기된 것으로 느끼고, 스스로 오늘의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동료와의 업무 통화라면 "그럼 수요일까지 초안 보내 드릴게요. 그 프로젝트 얘기는 다음 주 커피 하면서 들을게요", 친구들과의 여행 계획이라면 "숙소는 여기로 정하고, 네 제주도 얘기는 가서 밤에 마저 해 줘"로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의 훈련
오늘 회의나 대화가 딴 길로 새면, 끊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먼저 속으로 "이 이야기의 교훈은 한 줄로 뭘까?"를 떠올려 보고, 그 한 줄을 "결국 ○○가 핵심이라는 거죠?"로 소리 내 확인해 보세요.
써먹기 좋은 자리: 윗사람이 주재하는 주간 회의, 경험 많은 거래처 담당자와의 미팅, 부모님과 함께하는 집안 대소사 의논.
회의 전 화이트보드나 메모에 안건과 종료 시간을 먼저 적어 두세요. 되돌아올 목적지가 눈에 보이면, 환승할 타이밍도 훨씬 잘 보입니다.
그날 점심, 회사 앞 국숫집에서 팀장은 2011년에 잃어버린 한 달을 어떻게 만회했는지 30분 동안 이야기했습니다. 예솔 과장은 휴대폰 메모장에 그 이야기에서 나온 교훈 세 가지를 적어 두었습니다. 다음 분기 런칭 회의에서, 그 세 줄이 또 어떤 기준이 되어 줄지 궁금해하면서요.
샌 대화를 되돌리는 힘은 이야기를 끊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의 뜻을 먼저 알아듣는 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대화가 딴 길로 새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아예 대화에서 빠져나가 버린다면요? 저녁 식탁에서 연인이 휴대폰 화면만 보며 "응", "그래"만 되풀이할 때, 멀어진 상대의 주의를 다시 대화로 데려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교훈 환승법, 녹화된 회의 연구는 어디까지 뒷받침할까?
교훈 환승법은 회의 상호작용 연구 세 편과 체면 이론 한 권을 이어 만든 기법입니다. 각 자료가 확인한 것과 옮길 때 조심할 것을 나눠 보겠습니다.
근거 정리
녹화된 팀 회의 92건에서 문제 해결과 실행 계획 같은 기능적 발언은 회의 만족도·팀 생산성·2년 반 뒤 조직 성과와 이어졌고, 비판과 불평 같은 역기능적 발언은 그보다 더 큰 부정적 관계를 보였습니다(Kauffeld & Lehmann-Willenbrock, 2012).
업무 회의 52건에서 불평이 꼬리를 무는 흐름은 가라앉은 분위기와, 변화에 관심을 보이는 말이 이어지는 흐름은 활기찬 분위기와 관련이 있었습니다(Lehmann-Willenbrock 외, 2011).
19개 조직의 회의 59건에서 회의를 구조화하는 절차적 발언은 다른 참석자의 지지를 받고 책임과 일정에 관한 말을 끌어냈으며, 초점 이탈과 불평을 줄였습니다(Lehmann-Willenbrock 외, 2013). 체면을 긍정적·부정적 두 가지로 나누고 말을 끊는 행위를 체면 위협으로 보는 틀은 브라운과 레빈슨의 1987년 저서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세 편의 회의 연구는 모두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기업의 회의를 녹화해 분석한 관찰 연구입니다. 특정 발언과 좋은 결과가 함께 나타났다는 뜻이지, 그 발언이 결과를 직접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잘 굴러가는 팀이라서 절차적 발언이 자연스럽게 많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계가 뚜렷한 한국의 회의실에서는 아랫사람이 절차를 말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부담일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 절차적 발언이 지지를 받았다는 결과가 그대로 옮겨진다고 보기 어렵고, 그래서 이번 회차는 체면을 먼저 세워 주는 교훈 확인 단계를 앞에 붙였습니다. 이 순서의 효과는 실험으로 비교된 것이 아니라 이번 회차의 해석입니다.
브라운과 레빈슨의 체면 이론은 문화 보편성을 두고 오랫동안 비판도 받아 왔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개인의 체면보다 집단 속 위치와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주예솔 과장의 사례도 팀장이 준비된 비교표를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생각해보기
회의 중 상사의 이야기가 길어질 때는 어떻게 끊어야 할까?
끊는 말을 고르기 전에, 그 이야기가 오늘 안건과 이어지는 교훈을 담고 있는지 찾아보세요. 교훈을 먼저 인정하면, 끊지 않고도 본론으로 돌아올 다리가 생깁니다.
나는 "본론으로 가시죠"처럼 옳지만 차가운 말을 쓰고 있지 않은가?
최근 회의에서 누군가의 말을 정리하거나 끊었던 문장을 떠올려 보세요. 그 문장이 상대의 경험을 인정하는 말이었는지, 부정하는 말이었는지에 따라 이후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돌아보세요.
나는 회의에서 결정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가,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결정권이 윗사람에게 있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어떤 선택지 중에서 고를지는 준비한 사람이 설계할 수 있습니다. 다음 회의에서 기준 한 줄과 선택지 두 개를 먼저 올려 보세요.
회의가 불평으로 흘러갈 때 분위기를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에 맞장구를 치는 대신 "그럼 그중에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뭘까요?"처럼 변화에 관심을 보이는 말을 하나 던져 보세요. 불평이 꼬리를 물듯, 그 말도 꼬리를 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뽑았는데 내 결론과 반대라면 어떻게 할까?
그 교훈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내 안을 다시 보세요. 교훈 환승법은 상대의 이야기를 내 결론에 끼워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기준 위에서 결정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참고 자료
Kauffeld, S., & Lehmann-Willenbrock, N., 「Meetings Matter: Effects of Team Meetings on Team and Organizational Success」, Small Group Research(2012) — 원문 보기
Lehmann-Willenbrock, N., Meyers, R. A., Kauffeld, S., Neininger, A., & Henschel, A., 「Verbal Interaction Sequences and Group Mood」, Small Group Research(2011) — 원문 보기
Lehmann-Willenbrock, N., Allen, J. A., & Kauffeld, S., 「A Sequential Analysis of Procedural Meeting Communication: How Teams Facilitate Their Meetings」, Journal of Applied Communication Research(2013) — 원문 보기
Brown, P., & Levinson, S. C., 「Politeness: Some Universals in Language Us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