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본 원리 Ep 008 징검다리 질문법, 면접 같은 소개팅

대화의 기본 원리  >  질문의 설계  >  질문의 무게 조절  ·  중급

이번 회차 학습 목표: 같은 질문이 어떤 때는 가볍고 어떤 때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해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질문의 깊이를 한 칸씩 올려 가는 법을 익힙니다. Ep 007이 상대가 꺼낸 이야기의 실을 붙잡는 법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직 붙잡을 실조차 없는 처음 만난 사이에서 그 실이 나오도록 길을 놓는 법으로 한 단계 심화합니다.

이번 회차의 한 문장

오늘부터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문하기 전에, 같은 깊이의 내 이야기 한 조각을 먼저 내려놓게 됩니다.

"그럼 연봉은… 괜찮으세요? 아, 실례인가."

토요일 오후 3시, 창가 자리에 앉은 지 12분째였습니다. 회계법인에 다니는 서른넷 편도윤 씨는 회사 선배가 이어 준 소개팅 자리에서, 서른한 살 가구 디자이너 명서아 씨에게 벌써 다섯 번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서아 씨의 라테는 거의 줄어들지 않은 채 식어 가고 있었습니다.

조건을 묻는 질문 다섯 개가, 소개팅을 면접으로 바꿔 놓았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질문이 무거워지는 건 한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들이 쌓이는 속도와 방향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 없이 상대의 조건만 연달아 확인하면, 대화는 순식간에 심사로 바뀝니다.

편도윤: 무슨 일 하세요?

명서아: 가구 디자인해요. 작은 공방에서요.

편도윤: 아, 공방이면 회사는 아니신 거네요. 직원은 몇 명이에요?

명서아: 저까지 셋이요.

편도윤: 그럼 연봉은… 괜찮으세요? 아, 실례인가.

명서아: …그럭저럭이요.

편도윤: 결혼은 몇 살쯤 생각하세요? 집은 부모님이랑 사시고요?

명서아: (컵을 내려다보며 웃는다) 저 지금 면접 보는 것 같네요.

도윤 씨는 당황해서 "아, 그런 뜻은 아니고요"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 뒤로 대화는 날씨와 요즘 본 영화 이야기로 흩어졌고, 서아 씨는 한 시간이 조금 넘자 "공방에 들러야 해서요"라며 가방을 챙겼습니다.

도윤 씨는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곱씹었습니다. 연봉을 물은 게 실수였을까. 결혼 얘기가 너무 빨랐을까. 그런데 며칠 뒤 주선자가 전해 준 서아 씨의 후기는, 도윤 씨가 생각한 이유와 조금 달랐습니다.

주선자가 전해 준 한 줄 후기, "어떤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겠대"

처음 만난 사람이 질문을 받고 불편해하는 건 대개 질문 하나의 민감함 때문이 아닙니다. 묻기만 하고 자기는 드러내지 않는 상대 앞에서, 자기만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선자였던 회사 선배는 메신저로 이렇게 전했습니다. "서아 씨가 너 나쁜 사람 같진 않대. 근데 질문은 엄청 많이 받았는데, 정작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대."

도윤 씨는 휴대폰을 한참 내려다봤습니다. 그날 한 시간 동안 자기가 한 말을 떠올려 보니, 대부분 물음표로 끝나 있었습니다. 서아 씨가 "도윤 씨는요?"라고 되물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짧게 답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질문을 많이 하면 관심 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아 씨에게는 서류를 검토당하는 시간이었던 겁니다.

여러분도 이런 자리에 앉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상대가 계속 묻기만 하는데, 대답할수록 점점 마음이 닫히던 경험. 그렇다면 그날의 연봉 질문은 정말 금기였을까요? 흥미롭게도 연구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와튼 연구팀의 뜻밖의 결론, 연봉을 물어도 인상은 나빠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민감한 질문이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내 인상을 망칠 거라고 크게 걱정하지만, 실제로 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질문 자체의 무게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가볍습니다.

와튼스쿨의 모리스 슈바이처와 에이나브 하트, 에릭 반엡스는 2021년, 다섯 차례 실험에 참가한 1,427명을 대상으로 민감한 질문의 대가를 측정했습니다. 친구와 낯선 사람, 대면과 채팅을 가리지 않고, "월급이 얼마예요?" 같은 민감한 질문을 한 사람과 "출근은 어떻게 하세요?" 같은 무난한 질문을 한 사람이 받은 인상은 비슷하게 좋았습니다.

민감한 질문(sensitive question) — 돈, 건강, 연애, 실패 경험처럼 사적이고 대답하기 곤란할 수 있는 영역을 건드리는 질문입니다. 흔히 처음 만난 사이에서는 피해야 할 질문으로 여겨지지만, 연구에서는 받는 쪽이 생각만큼 불편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윤 씨의 연봉 질문은 그 자체만으로 분위기를 식힌 주범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민감한 질문을 피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봤습니다.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그리고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 — 다른 사람에게 비칠 내 모습을 의식해 말과 행동을 조절하는 과정입니다. 대화에서는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과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서로 부딪치곤 합니다. 도윤 씨가 연봉을 묻고 곧바로 "아, 실례인가"를 붙인 것도 이 인상 관리가 작동한 순간입니다.

대화 예측 오류(conversational forecasting error) —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의 반응이나 결과를 실제와 다르게 예측하는 실수입니다. 민감한 질문의 경우, 묻는 사람은 그 대가를 체계적으로 과대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정작 필요한 질문을 못 하거나, 해 놓고도 과하게 사과하며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연봉 질문이 문제가 아니었다면, 그날 소개팅을 무겁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날의 질문을 무겁게 만든 건, 내용이 아니라 건너뛴 계단이었다

관계는 가벼운 이야기에서 깊은 이야기로 한 층씩 내려가며 가까워집니다. 질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그 질문이 요구하는 깊이가 지금까지 함께 내려온 깊이보다 한참 아래에 있을 때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어윈 올트먼과 달마스 테일러는 1973년,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을 양파 껍질에 빗대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바깥의 가벼운 정보부터 조금씩 드러내고, 믿음이 쌓일수록 안쪽의 사적인 층을 보여 준다는 겁니다.

사회적 침투 이론(social penetration theory) — 대인 관계가 서로의 겉모습에서 속마음으로, 얕은 교류에서 깊은 교류로 점차 파고들며 발전한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이 과정은 대체로 단계적이며, 한 사람이 너무 빨리 깊은 층을 요구하면 상대는 뒤로 물러납니다. 소개팅 12분 만에 나온 결혼 계획 질문은, 두 사람이 아직 바깥 껍질에 있을 때 가장 안쪽 층을 두드린 셈입니다.

이 이론은 관계가 넓어지는 방향과 깊어지는 방향을 나눠서 봅니다. 두 방향은 짝을 이루지만, 질문의 무게를 판단할 때는 따로 따져야 합니다.

관계의 폭(breadth) —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말합니다. 일, 취미, 음식, 동네처럼 여러 영역을 가볍게 오가며 넓어집니다. 첫 만남에서는 폭을 먼저 넓혀야 상대가 편하게 들어올 문이 많아집니다.

관계의 깊이(depth) — 한 주제 안에서 얼마나 사적이고 중요한 층위까지 이야기하는지를 말합니다. 같은 "일" 이야기도 직업명에서 그 일을 하는 이유, 그 일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갈수록 깊어집니다. 도윤 씨의 질문은 폭을 넓히지 못한 채 조건이라는 한 주제의 깊이만 단숨에 파고들었습니다.

이 단계적 원리를 실험실로 옮긴 연구가 있습니다. 아서 에런 연구팀은 1997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이 45분 동안 점점 깊어지는 질문을 서로 주고받게 했습니다. 그러자 비슷한 시간 동안 가벼운 잡담만 나눈 쌍보다 뚜렷하게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습니다. 핵심은 깊은 질문 자체가 아니라, 가벼운 질문에서 깊은 질문으로 서서히 올라가는 계단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원한 건 대답할 질문이 아니라, 건너올 돌 하나였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는 한쪽이 털어놓으면 다른 쪽도 비슷한 깊이로 털어놓는 주고받기가 호감을 만듭니다. 묻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건너올 돌 없이 강을 건너라고 요구하는 셈입니다.

수전 스프레처 연구팀은 2013년, 처음 만난 사람들이 구조화된 방식으로 서로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면서 순서를 바꿔 봤습니다. 서로 번갈아 바로바로 주고받은 쌍이, 한 사람이 한참 털어놓은 뒤에야 다른 사람이 털어놓은 쌍보다 서로를 더 좋아했습니다.

자기 노출 상호성(self-disclosure reciprocity) —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상대도 비슷한 수준으로 털어놓게 되는 경향입니다. 대화의 균형을 맞추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처음 만난 사이일수록 이 균형이 관계의 안전감을 좌우합니다. 서아 씨가 "도윤 씨는요?"라고 되물은 것은 이 균형을 맞추려는 신호였는데, 도윤 씨는 그 신호를 짧은 답으로 흘려보냈습니다.

연구팀은 주고받는 방식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두 방식 모두 결국엔 균형이 맞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의 효과는 달랐습니다.

즉각적 주고받기(turn-taking reciprocity) — 한 사람이 털어놓으면 곧바로 상대가 같은 수준으로 이어서 털어놓는 방식입니다. 한 문장, 한 문단 단위로 균형이 맞춰지기 때문에 누구도 혼자 드러나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스프레처 연구에서 가장 큰 호감을 만든 것이 이 방식이었습니다.

지연된 주고받기(extended reciprocity) — 한 사람이 한동안 털어놓고, 한참 뒤에야 상대가 털어놓는 방식입니다. 길게 보면 균형이 맞지만, 그 사이 먼저 털어놓은 사람은 혼자 드러나 있는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도윤 씨의 첫 소개팅은 지연조차 없이, 서아 씨만 계속 털어놓다 끝난 경우였습니다.

여기서 Ep 007에서 다룬 부메랑 질문과 헷갈리지 않아야 합니다. 부메랑 질문은 상대의 대답을 받자마자 이야기를 내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고, 이번 회차의 주고받기는 같은 깊이의 내 이야기를 짧게 내밀어 상대가 편하게 건너올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는 무대를 빼앗고, 하나는 다리를 놓습니다.

돌을 먼저 놓은 사람에게, 두 번째 만남의 주도권이 넘어왔다

질문의 깊이를 정하는 건 질문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내 이야기를 먼저 한 칸씩 내려놓으며 깊이를 조절하는 사람이, 대화가 어디까지 깊어질지를 이끌게 됩니다.

한 달 뒤, 주선자의 설득 끝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엔 서아 씨의 공방 근처 작은 카페였습니다. 도윤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했습니다.

편도윤: 지난번엔 제가 면접관처럼 굴었죠. 오늘은 제 얘기도 좀 하면서 물어볼게요.

명서아: 하하, 좋아요. 기대할게요.

편도윤: 저는 요즘 퇴근하고 동네 한 바퀴 걷는 게 제일 좋아요. 하루 종일 숫자만 보다가 나무를 보면 머리가 좀 식더라고요. 서아 씨는 하루 중에 언제가 제일 좋으세요?

명서아: 저는 공방 불 끄기 직전이요. 다들 퇴근하고 톱밥 냄새만 남아 있을 때.

편도윤: 톱밥 냄새라니, 그거 좋겠다. 저는 입사 첫해 결산 끝나고 새벽에 혼자 사무실 불 끄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서아 씨는 가구 만들면서 그런 순간 있었어요?

명서아: 있어요. 처음 만든 식탁을 사 간 부부가, 1년 뒤에 그 식탁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내 줬을 때요. 그날 공방에서 혼자 좀 울었어요.

대화는 그렇게 한 칸씩 내려갔습니다. 하루 중 좋아하는 시간에서, 일에서 뿌듯했던 순간으로,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로.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서아 씨가 먼저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명서아: 사실 저 요즘 제 이름 걸고 공방 차리려고 돈 모으는 중이에요.

편도윤: 오, 저도 비슷한 목표가 있어요. 3년 안에 제 힘으로 전셋집 구하려고 월급 절반씩 모으고 있거든요. 서아 씨는 목표 금액이나 시기 정해 두셨어요?

명서아: 네, 1년 반 정도 더 모으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이 얘기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하는 건 처음이에요. 지금 버는 게 얼마고 어디에 모으고 있냐면…

한 달 전에는 "그럭저럭이요"로 닫혔던 돈 이야기가, 이번엔 서아 씨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왔습니다. 도윤 씨가 한 질문은 오히려 더 민감한 쪽이었습니다. 목표 금액과 시기까지 물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질문은 무겁지 않았습니다. 같은 깊이의 자기 이야기가 바로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만남에서 도윤 씨는 질문을 쏟아냈지만, 대화가 얼마나 깊어질지는 전혀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한 칸씩 먼저 내려놓으며 깊이를 정했고, 서아 씨는 그 돌을 밟고 따라 내려왔습니다. 대화의 깊이를 설계한 사람이 결국 대화의 방향을 쥔 겁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이 방식을 "징검다리 질문법"이라 부르겠습니다. 질문 하나를 던지기 전에, 같은 깊이의 내 이야기라는 돌을 하나 먼저 놓고, 깊이는 한 번에 한 칸씩만 내려가는 겁니다. 민감한 질문도 돌이 충분히 놓인 뒤라면 가볍게 건널 수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질문이 무거워지는 건 내용 때문이 아니라, 아직 놓이지 않은 돌을 건너뛰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깊이의 내 이야기를 먼저 놓고, 깊이는 한 칸씩만 내려가세요.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내 돌이 상대의 돌보다 지나치게 크거나 깊으면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첫 만남에 내 가정사나 큰 상처를 먼저 꺼내 놓고 같은 깊이의 답을 기다리면, 상대는 따라오기 어려워합니다. 또 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 Ep 007의 부메랑 질문처럼 무대를 빼앗게 됩니다. 돌은 짧게, 상대의 대답보다 조금 얕게 놓는 편이 안전합니다. 상대가 짧게 답하며 화제를 돌린다면, 그 층에서 한 칸 올라오는 것이 맞습니다.

이 순서를 건너뛰면, 좋은 질문도 심문이 됩니다

징검다리 질문법은 세 개의 문장으로 연습할 수 있습니다. 돌을 놓고, 한 칸 내려가고, 민감한 질문 앞에서는 내 패를 먼저 보여 주는 순서입니다.

내 돌을 먼저 놓고 묻기

"저는 요즘 ○○이 제일 좋더라고요. △△ 씨는 요즘 뭐가 제일 좋으세요?" 질문 앞에 같은 주제의 내 이야기 한 문장을 붙입니다. 상대는 무엇을 어느 정도로 말하면 되는지 기준을 얻고, 혼자 드러난다는 부담도 줄어듭니다. 새 팀 동료와의 점심이라면 "저는 이 동네 와서 제일 좋은 게 점심 산책이에요. ○○ 씨는 이 근처에 좋아하는 데 있어요?", 동호회 첫 모임이라면 "저는 등산 시작한 지 1년인데 아직도 내려올 때가 제일 좋아요. 처음 오신 계기가 뭐였어요?"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사실에서 경험으로 한 칸만 내려가기

"저는 그 일 하면서 ○○일 때가 기억에 남던데, 그런 순간 있었어요?" "무슨 일 하세요?"라는 사실 질문 다음에 곧장 조건으로 가지 말고, 그 사실 속의 경험으로 한 칸 내려갑니다. 조건은 사람을 평가하게 만들고, 경험은 사람을 알게 만듭니다. 이직한 지인에게라면 "저는 옮기고 첫 주가 제일 낯설었는데, 새 회사에서 처음 적응될 때가 언제였어요?", 여행을 좋아한다는 상대에게라면 "저는 여행 가면 첫날 밤 산책이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요. 여행 가서 늘 하는 의식 같은 거 있어요?"로 쓸 수 있습니다.

민감한 질문 앞에는 내 패를 먼저 보여 주기

"저도 요즘 ○○ 때문에 고민이 좀 있는데, △△ 씨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돈, 결혼, 진로처럼 무거운 주제는 내 상황을 먼저 한 문장 보여 준 뒤에 묻습니다. 질문이 캐묻기가 아니라 같은 고민을 나누는 초대가 됩니다. 입사 동기에게라면 "나는 이번 연봉 협상 때 한 5% 정도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너는 어땠어?",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라면 "우리 집은 예식 비용 반반으로 정했는데, 너희는 어떻게 나눴어?"로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의 훈련

오늘 처음 대화하거나 오랜만에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질문할 때, 질문 바로 앞에 같은 주제의 내 이야기 한 문장을 먼저 붙여 보세요.

써먹기 좋은 자리: 새로 온 동료와의 첫 점심, 모임에서 처음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

대화가 끝난 뒤 내 문장 중 물음표로 끝난 것과 마침표로 끝난 것의 비율을 떠올려 보세요. 물음표만 가득했다면, 다음번엔 돌을 하나 더 놓아 보세요.

카페를 나와 공방 앞 골목에서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눴습니다. 몇 걸음 걸어가던 서아 씨가 뒤를 돌아 손을 한 번 흔들고는, 톱밥 냄새가 남아 있을 공방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도윤 씨는 그 문이 닫힐 때까지 골목에 서 있었습니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캐내는 삽이 아니라, 상대가 건너올 수 있게 먼저 놓아 주는 돌입니다.

그런데 돌을 아무리 놓아도, 상대가 좀처럼 자기 얘기를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면요? 업무로 처음 만난 거래처 담당자처럼 딱 필요한 말만 하는 상대 앞에서,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는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연봉 질문도 괜찮다는 연구, 선뜻 믿기지 않으셨을 겁니다

징검다리 질문법이 기대는 연구들은 방향이 분명하지만, 모두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확인된 것과 조심할 것을 나눠 보겠습니다.

근거 정리

다섯 차례 실험에서 사람들은 민감한 질문의 대인 관계 비용을 체계적으로 과대평가했고, 실제로는 연봉 같은 민감한 질문을 한 사람도 무난한 질문을 한 사람과 비슷하게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Hart 외, 2021).

처음 만난 두 사람이 45분 동안 점점 깊어지는 질문을 주고받자, 가벼운 잡담만 나눈 쌍보다 더 큰 친밀감을 느꼈습니다(Aron 외, 1997).

처음 만난 사이에서 곧바로 번갈아 털어놓은 쌍이, 한쪽이 먼저 길게 털어놓은 쌍보다 서로를 더 좋아했습니다(Sprecher 외, 2013). 관계가 겉에서 속으로 단계적으로 깊어진다는 틀은 올트먼과 테일러의 사회적 침투 이론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민감한 질문 연구는 질문을 한 사람의 인상을 주로 측정했습니다. 인상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언제나 솔직하게 답한다거나 질문을 여러 개 연달아 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소개팅에서 조건을 확인하는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같은 질문이 "나를 심사하고 있다"는 신호로 더 쉽게 읽힐 수 있습니다.

에런 연구팀의 질문 목록은 실험실에서 정해진 순서대로 주고받는 구조화된 과제였고, 목표는 일시적인 친밀감이었습니다. 연애 감정이나 관계의 지속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스프레처 연구 역시 정해진 방식으로 털어놓는 실험이어서, 자유로운 대화에서는 효과가 더 작거나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편도윤 씨의 사례처럼 두 번째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징검다리 질문법은 첫 만남에서 쓸수록 가치가 크다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생각해보기

소개팅에서 질문을 많이 했는데 왜 분위기가 식었을까?

그날 내가 한 말 중 물음표로 끝난 문장과 내 이야기를 담은 문장의 비율을 떠올려 보세요. 질문만 가득했다면, 상대는 대답할수록 혼자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연봉이나 결혼 같은 걸 물어봐도 될까?

질문 자체보다 그 질문이 나오기까지 함께 내려온 깊이를 먼저 확인해 보세요. 같은 주제의 내 상황을 먼저 한 문장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때는 물어도 괜찮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이 대화의 깊이를 설계하고 있는가, 질문만 쏟아내고 있는가?

대화가 한 칸씩 깊어졌는지, 아니면 한 번에 가장 깊은 곳으로 뛰어들었는지 돌아보세요. 깊이를 한 칸씩 정해 온 사람이 대화의 방향을 이끈 사람입니다.

상대가 "○○ 씨는요?"라고 되물을 때 나는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되물음은 대화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는 신호입니다. 짧게 넘기지 말고, 상대가 털어놓은 것과 비슷한 깊이로 한두 문장 답해 보세요.

내 이야기를 먼저 하면 자기 자랑처럼 보이지 않을까?

돌은 짧고 상대의 대답보다 조금 얕게 놓으면 됩니다. 한 문장으로 내 이야기를 내밀고 곧바로 상대에게 질문을 넘기면, 자랑이 아니라 초대로 들립니다.

참고 자료

Hart, E., VanEpps, E. M., & Schweitzer, M. E., 「The (better than expected) consequences of asking sensitive question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2021) — 원문 보기

Aron, A., Melinat, E., Aron, E. N., Vallone, R. D., & Bator, R. J., 「The Experimental Generation of Interpersonal Closeness: A Procedure and Some Preliminary Finding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1997) — 원문 보기

Sprecher, S., Treger, S., Wondra, J. D., Hilaire, N., & Wallpe, K., 「Taking turns: Reciprocal self-disclosure promotes liking in initial interaction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2013) — 원문 보기

Altman, I., & Taylor, D. A., 「Social Penetration: The Development of Interpersonal Relationships」, Holt, Rinehart & Winston(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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