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본 원리 > 질문의 설계 > 짐작 대신 탐침 · 중급
이번 회차 학습 목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짐작이 왜 자주 빗나가는지 이해하고, 자기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상대에게서 진짜 관심사를 찾아내는 세 가지 탐침 질문을 익힙니다. Ep 008이 내 이야기를 먼저 놓아 상대가 건너오게 하는 법이었다면, 이번에는 상대가 좀처럼 건너오지 않을 때 짐작을 멈추고 짧은 질문으로 관심사를 확인하는 법으로 보완합니다.
이번 회차의 한 문장
오늘부터 상대가 무엇을 원할지 머릿속으로 맞히려 하지 않고, 짧은 질문 하나로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상대를 덜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친환경 포장재 회사의 영업 과장 방재혁 씨는 그 순간을 3주 동안 준비했습니다. 목요일 오후 2시, 중견 식품회사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컬러로 뽑은 스무 장짜리 제안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표지에는 초록 잎사귀와 지구 그림, 넘길 때마다 탄소 배출 그래프와 인증 마크가 이어졌습니다. 맞은편에는 이 회사 구매팀의 제은숙 차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스무 장짜리 제안서가, 상대의 관심사를 가리고 있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할지 미리 짐작하고 그 짐작에 맞춰 준비할수록, 정작 대화에서는 상대의 진짜 관심사를 확인할 틈이 사라집니다. 준비한 것을 다 보여 주는 데 시간을 쓰느라, 물어볼 시간이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혁 씨의 짐작은 합리적이었습니다. 요즘 식품회사들은 너도나도 친환경을 앞세우고, 이 회사도 올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처음 냈습니다. 그러니 구매팀도 친환경 포장재에 관심이 클 것이다. 재혁 씨는 은숙 차장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애썼고, 그 결과가 스무 장의 제안서였습니다.
방재혁: 저희 포장재로 바꾸시면 연간 탄소 배출을 이만큼 줄이실 수 있고요, 여기 이 인증은 내년부터 대형 유통사 납품 기준에도 들어갈 예정이라…
제은숙: 네.
방재혁: 그리고 이 페이지를 보시면, 경쟁사 대비 재활용률도…
제은숙: 네, 좋네요. 자료는 두고 가시면 저희가 검토해 볼게요.
방재혁: 아, 네. 혹시 궁금하신 점은…?
은숙 차장은 이미 수첩을 덮고 있었습니다. 미팅은 계획보다 15분 일찍 끝났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재혁 씨는 제안서를 한 장씩 떠올렸습니다. 빠진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은숙 차장이 제안서 중 어느 페이지에서 눈을 멈췄는지는, 한 장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검토해 볼게요"의 속뜻, 전화 한 통으로 드러난 진짜 급한 일
말수가 적은 상대의 "검토해 볼게요"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내 관심사를 아직 아무도 묻지 않았다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짐작이 빗나간 자리에는 늘 물어보지 않은 질문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일주일 뒤, 재혁 씨는 인사차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식적인 안부가 오가다 은숙 차장이 지나가듯 한마디를 흘렸습니다.
제은숙: 친환경도 좋은데요, 솔직히 저희는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라서요. 여름만 되면 배송 중에 박스가 눌려서 반품이 쏟아지거든요.
방재혁: 아… 그러셨구나. 저희 제품도 강도가 꽤 좋은 편이라, 자료 보내 드릴까요?
제은숙: 네, 뭐 보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재혁 씨는 자기가 또 같은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반품이라는 단서가 나왔는데, 그 단서를 더 파고드는 대신 곧바로 자료 이야기로 넘어간 겁니다. 3주 동안 은숙 차장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정작 한 번도 "지금 제일 급한 게 뭐예요?"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상대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선물이나 제안이 엉뚱한 곳을 향해 있었던 경험. 그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준비의 출발점이 내 짐작이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짐작의 한계를 정면으로 실험한 연구가 있습니다.
시카고대 에플리 연구팀, 25번의 실험으로 짐작의 한계를 보여 주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상해 보라는 조언은 흔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상대의 생각을 더 정확히 맞히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도를 높인 건 상상이 아니라 직접 묻는 것이었습니다.
탈 에얄, 메리 스테펠, 니컬러스 에플리는 2018년, 무려 25번의 실험을 통해 한 가지를 검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지시하면,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 선호를 더 정확히 맞힐까? 표정 읽기부터 가까운 사람의 취향 예측까지 다양한 과제를 써 봤지만, 일관된 개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확도는 떨어지고 자신감만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 —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낄지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공감의 출발점으로 널리 권장되지만, 상상의 재료가 결국 내 경험과 내 가정이기 때문에 빗나가기 쉽습니다. 재혁 씨가 3주 동안 한 일이 바로 이 관점 취하기였고, 그 결과 확신은 커졌지만 과녁은 벗어났습니다.
관점 얻기(perspective-getting) — 상대의 생각을 상상하는 대신, 대화를 통해 그 사람에게서 직접 듣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에얄 연구팀은 논문 제목에서부터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관점을 "취하는" 게 아니라 "얻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지금 제일 급한 게 뭐예요?"라는 한 문장이 스무 장의 제안서보다 정확한 이유입니다.
이 연구가 영업 현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불편하지만 분명합니다. 고객을 깊이 연구할수록 고객을 안다는 착각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준비는 필요합니다. 다만 그 준비는 정답을 들고 가는 게 아니라, 확인할 가설 몇 개를 들고 가는 쪽이어야 합니다.
구매 담당자가 원했던 건 좋은 설명이 아니라, 자기 문제를 물어봐 주는 사람이었다
고객은 잘 설명하는 영업 담당자보다 잘 들어 주는 담당자를 더 믿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어 합니다.
로즈메리 램지와 라비프리트 소히는 1997년, 새 차를 산 고객들을 대상으로 영업 사원의 경청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습니다. 고객이 영업 사원을 잘 듣는 사람으로 느낄수록 그 사람을 더 신뢰했고, 앞으로도 다시 거래하고 싶어 했습니다. 연구팀은 경청을 세 가지 요소로 나눠 봤습니다.
감지(sensing) — 상대가 하는 말과 함께 말투, 표정, 지나가듯 흘린 단어 같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단계입니다. 경청의 첫 관문이라, 여기서 놓친 단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은숙 차장이 전화에서 흘린 "여름만 되면 반품이"라는 한마디가, 재혁 씨가 감지해야 했던 첫 신호였습니다.
평가(evaluating) — 감지한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해석하고 기억해 두는 단계입니다. 같은 "반품"이라도 비용 문제인지, 고객 불만 문제인지, 내부 책임 문제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해법이 필요합니다. 재혁 씨는 반품을 듣고 곧바로 "우리 제품 강도가 좋다"로 해석해 버려, 평가 단계를 건너뛰었습니다.
반응(responding) — 들은 내용을 이해했다는 것을 질문이나 말로 상대에게 되돌려 주는 단계입니다. 고객이 "이 사람은 내 말을 들었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이 반응을 통해서입니다. "자료 보내 드릴까요?"는 반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들은 내용 대신 준비한 내용을 돌려준 셈이었습니다.
자료 없이 들어간 20분, 미팅의 주도권이 영업 과장에게 넘어왔다
설명을 내려놓고 질문을 들고 들어가면, 미팅의 방향을 정하는 쪽이 오히려 질문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단서를 더 파고들지 고르는 사람이 대화가 어디로 갈지를 쥐기 때문입니다.
재혁 씨는 다시 미팅을 청했습니다. 은숙 차장이 허락한 시간은 20분. 이번엔 제안서를 한 장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가방 안에는 모서리가 찌그러진 빈 택배 박스 하나와, 메모지에 적은 질문 세 개만 들어 있었습니다.
방재혁: 오늘은 자료 없이 왔습니다. 지난번엔 제가 친환경이 제일 중요하실 거라고 짐작했는데, 그게 틀렸던 것 같아서요. 요즘 차장님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일이 뭔가요?
제은숙: 반품이죠. 여름엔 한 주에도 몇 번씩 회의가 잡혀요.
방재혁: 눌린다는 게 주로 박스 모서리 쪽인가요, 윗면인가요? (가방에서 찌그러진 박스를 꺼낸다) 혹시 이런 식인가요?
제은숙: 어, 딱 이거예요. 근데 사실 제일 골치 아픈 건 반품 자체보다요, 영업팀에서 그걸 전부 구매팀이 포장재 잘못 골라서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택배사 탓인지 포장재 탓인지 증거가 없으니까.
방재혁: 그럼 파손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손 원인이 어디서 생기는지 숫자로 보여 드릴 수 있으면 차장님 입장에선 더 도움이 되겠네요?
제은숙: 그거예요. 그런 자료 만들 수 있어요?
방재혁: 저희 박스로 2주만 시험 출고해 보시고, 기존 박스랑 파손 위치와 비율을 나란히 표로 정리해 드리면 어떨까요? 친환경 얘기는 그다음에 필요하시면 따로 드리겠습니다.
20분 약속이었던 미팅은 50분이 됐습니다. 은숙 차장은 물류 담당자를 회의실로 불러 시험 출고 일정을 그 자리에서 잡았습니다. 재혁 씨가 준비한 질문은 세 개였지만, 이 회사의 진짜 관심사는 두 번째 질문에서 드러났습니다. 친환경도, 반품도 아닌 "구매팀이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을 증거"였습니다.
첫 미팅에서 재혁 씨는 한 시간 가까이 말했지만, 미팅이 어디로 갈지는 은숙 차장의 "검토해 볼게요"가 정했습니다. 두 번째 미팅에서는 질문 세 개로 들어갔고, 그중 어떤 단서를 파고들지를 재혁 씨가 골랐습니다. 반품에서 파손 위치로, 파손 위치에서 내부 책임 문제로. 대화의 방향을 쥔 건 설명하는 쪽이 아니라 묻는 쪽이었습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이 방식을 "탐침 질문법"이라 부르겠습니다. 땅속을 파기 전에 가느다란 탐침을 꽂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듯, 준비한 설명을 꺼내기 전에 짧은 질문 몇 개로 상대의 관심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먼저 찔러 보는 겁니다.
핵심 포인트
상대의 관심사는 내가 상상해서 맞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에서 캐내는 것입니다. 준비는 정답이 아니라 확인할 가설로 들고 가고, 그 가설을 짧은 질문으로 하나씩 찔러 보세요.
준비한 대로 파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맞추는 사람, 누가 더 팔았을까?
고객을 아끼는 마음만으로는 실적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실적과 이어진 건 대화 중에 고객의 반응을 보고 접근 방식을 바꾸는 능력이었습니다.
조지 프랭크와 박정은은 2006년, 155개 표본에 걸친 3만 1천 명 이상의 영업 사원 연구를 메타분석했습니다. 두 가지 태도를 비교했는데, 결과는 뚜렷하게 갈렸습니다.
적응적 판매(adaptive selling) — 대화 중에 드러나는 고객의 반응과 상황에 맞춰 설명 방식, 순서, 강조점을 그 자리에서 바꾸는 판매 방식입니다. 프랭크와 박정은의 분석에서 이 태도는 본인 평가뿐 아니라 관리자 평가와 실제 실적 지표까지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혁 씨가 두 번째 미팅에서 친환경 설명을 뒤로 미루고 파손 데이터로 방향을 튼 것이 적응적 판매입니다.
고객 지향(customer orientation) — 고객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고객을 돕고 싶어 하는 영업 사원의 태도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지만, 같은 분석에서 이 태도는 본인이 스스로 매긴 실적만 높였을 뿐 관리자 평가나 객관적 실적과는 뚜렷하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첫 미팅의 재혁 씨는 고객 지향은 충분했지만, 그 마음을 고객의 실제 관심사에 맞추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두 개념을 나란히 놓으면 이번 회차의 핵심이 선명해집니다. 고객을 위하는 마음은 출발점일 뿐이고, 그 마음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대화 중에 고객의 관심사를 확인하고 방향을 바꾸는 동작이 필요합니다. 탐침 질문법은 그 동작을 가장 짧게 만든 도구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탐침 질문은 상대의 약점을 캐내 압박하는 데 쓰는 도구가 아닙니다. 은숙 차장이 털어놓은 내부 갈등을 약점 삼아 "그러니 우리 걸 쓰셔야 합니다"라고 몰아붙이면, 그 순간 질문은 신뢰를 깨는 덫이 됩니다. 상대가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려도 "나를 도우려고 묻는구나"로 느낄 수 있어야 올바른 사용입니다. 또 준비를 아예 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재혁 씨가 찌그러진 박스를 챙겨 간 것처럼, 준비는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데 쓰세요.
이 세 질문을 건너뛰면, 제안서는 끝까지 서랍 속에 남습니다
탐침 질문법은 세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집니다. 짐작을 확인하고, 시간을 뺏는 일을 찾고, 순서를 상대에게 맡겨 반응을 읽는 순서입니다.
내 짐작을 질문으로 뒤집어 내놓기
"제 짐작엔 ○○가 제일 중요하실 것 같은데, 맞나요? 아니면 더 급한 게 있으세요?" 준비한 가설을 숨기지 않고 꺼내되, 틀릴 수 있다는 걸 먼저 인정합니다. 상대는 맞다고 하든 아니라고 하든 자기 관심사를 말하게 됩니다. 팀장이 새 팀원에게라면 "제 짐작엔 야근이 제일 부담일 것 같은데, 맞아요? 아니면 다른 게 더 힘들어요?", 부모님 선물을 고른다면 "엄마, 난 안마기가 제일 필요할 줄 알았는데, 요즘 제일 불편한 게 따로 있어?"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시간을 가장 많이 뺏는 일을 묻기
"요즘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일이 뭔가요?" "관심사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상대는 모범 답안을 고릅니다. 시간을 뺏는 일을 물으면, 실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문제가 나옵니다. 친구에게라면 "요즘 머릿속을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게 뭐야?", 다른 부서 담당자와의 첫 협업이라면 "요즘 그 팀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업무가 뭐예요?"로 쓸 수 있습니다.
순서를 상대에게 고르게 하고 반응 읽기
"오늘 드릴 얘기가 세 갈래인데, 어디부터 들으시겠어요?" 준비한 내용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신 목록만 보여 주고 고르게 합니다. 상대가 무엇을 먼저 고르는지, 어느 항목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지가 그대로 관심사의 지도가 됩니다. 사내 교육을 맡았다면 "오늘 세 가지를 준비했는데, 제일 급한 것부터 할까요?", 가족과 이사를 의논한다면 "동네, 예산, 날짜 중에 뭐부터 정하고 싶어?"로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의 훈련
오늘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준비해야 한다면, 그 전에 "요즘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일이 뭐예요?"를 한 번 물어보세요.
써먹기 좋은 자리: 고객이나 협력사와의 첫 미팅, 가족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전의 전화 한 통.
질문하기 전에 내 짐작을 메모해 두고, 상대의 대답과 비교해 보세요. 얼마나 빗나갔는지가 오늘의 가장 값진 수확입니다.
2주 뒤 재혁 씨의 책상 위에는 시험 출고에서 돌아온 박스 몇 개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중 모서리가 멀쩡한 박스 하나 옆에, 처음 가방에 넣어 갔던 찌그러진 박스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스무 장짜리 제안서는 서랍 맨 아래 칸에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상대가 되어 보는 상상이 아니라, 상대에게 묻는 한 문장입니다.
그런데 탐침이 제대로 꽂혀서, 상대가 마침내 속마음을 꺼냈다면요? 후배가 면담에서 "사실 그만두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해결책부터 떠오르는 입을 어떻게 다물어야 할까요? 잘 듣는다는 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걸까요?
짐작 말고 물으라는 말, 영업 현장에선 반신반의하셨을 겁니다
탐침 질문법의 근거가 된 연구들은 방향이 분명하지만, 각자 다른 조건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확인된 것과 옮길 때 조심할 것을 나눠 보겠습니다.
근거 정리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지시는 25번의 실험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정확도를 일관되게 높이지 못했고, 때로는 정확도를 낮추면서 자신감만 높였습니다. 연구팀은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상대에게서 직접 관점을 얻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Eyal 외, 2018).
3만 1천 명 이상의 영업 사원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 적응적 판매는 본인·관리자 평가와 객관적 실적을 모두 높였지만, 고객 지향은 본인이 매긴 실적만 높였습니다(Franke & Park, 2006).
고객이 영업 사원의 경청을 높게 느낄수록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다음 거래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습니다(Ramsey & Sohi, 1997).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관점 얻기가 통하려면 상대가 솔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거래 관계에서는 담당자가 내부 사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을 수 있고, 한국의 거래처 관계처럼 위계가 분명할수록 첫 만남에서 속내를 듣기는 더 어렵습니다. 한 번의 질문으로 진짜 관심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하기보다, 은숙 차장처럼 지나가듯 흘린 단서를 모아 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프랭크와 박정은의 분석은 여러 연구의 상관관계를 모은 것이라, 적응적 판매가 실적을 직접 만들어 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적이 좋은 사람이 여유가 있어 더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램지와 소히의 연구는 새 차를 산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결정하는 기업 간 거래에서는 한 담당자의 신뢰만으로 계약이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기억해 두세요.
생각해보기
거래처 담당자가 "검토해 볼게요"라고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미팅에서 내가 설명한 시간과 상대에게 물어본 질문의 수를 비교해 보세요. 질문이 거의 없었다면, 다음 연락에서는 자료 대신 "요즘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일"부터 물어보세요.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했는데 왜 빗나갔을까?
최근 상대를 위해 준비했는데 반응이 시원찮았던 일을 떠올려 보세요. 그 준비의 출발점이 상대의 말이었는지, 내 짐작이었는지 돌아보세요.
나는 이 미팅의 방향을 질문으로 정하고 있는가, 준비한 설명에 끌려가고 있는가?
최근 미팅에서 상대의 단서를 듣고 계획을 바꾼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한 번도 없었다면, 방향은 준비한 자료가 정한 것입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의 관심사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관심사가 뭐예요?"처럼 크게 묻기보다, 시간을 뺏는 일이나 최근의 골칫거리처럼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보세요. 지나가듯 흘린 단어를 메모해 두는 것도 좋은 탐침이 됩니다.
질문을 많이 하면 준비가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준비한 가설을 "제 짐작엔 ○○인데 맞나요?"처럼 꺼내면, 질문은 준비 부족이 아니라 준비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찌그러진 박스처럼 질문을 날카롭게 해 줄 재료를 챙겨 가 보세요.
참고 자료
Eyal, T., Steffel, M., & Epley, N., 「Perspective Mistaking: Accurately Understanding the Mind of Another Requires Getting Perspective, Not Taking Perspectiv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2018) — 원문 보기
Franke, G. R., & Park, J.-E., 「Salesperson Adaptive Selling Behavior and Customer Orientation: A Meta-Analysis」,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2006) — 원문 보기
Ramsey, R. P., & Sohi, R. S., 「Listening to your customers: The impact of perceived salesperson listening behavior on relationship outcomes」, Journal of the Academy of Marketing Science(1997) —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