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본 원리 Ep 010 반사판 경청법, 답 대신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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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차 학습 목표: 상대가 속마음을 꺼냈을 때 해결책부터 내놓는 듣기가 왜 대화를 멈추게 하는지 이해하고, 답을 주는 대신 상대의 생각을 되비춰 스스로 정리하게 하는 듣기를 익힙니다. Ep 009가 탐침 질문으로 상대의 속마음을 꺼내는 법이었다면, 이번에는 "듣기의 기술"의 첫 회차로서 그렇게 꺼낸 속마음을 받는 법으로 이어 갑니다.

이번 회차의 한 문장

오늘부터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정답을 건네는 대신 그 사람의 말을 되비춰 스스로 답에 닿게 돕게 됩니다.

선배는 3분 만에 정답을 세 개나 내놓았습니다.

금요일 저녁 7시, IT 회사 13층 옥상 정원. 퇴근한 사람들이 빠져나간 벤치에는 가로등 불빛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개발팀 파트장인 서른일곱 소성민 씨는 입사 3년 차 후배 하예린 씨가 "잠깐 얘기할 수 있냐"고 보낸 메시지를 받고 올라온 참이었습니다. 편의점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앉자마자, 예린 씨가 먼저 입을 뗐습니다.

정답 세 개가 나오는 데 3분, 후배의 속마음은 거기서 멈췄다

누군가 무거운 고민을 꺼냈을 때 곧바로 해결책을 내놓으면, 상대는 아직 다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다시 삼킵니다. 해결책이 나오는 순간 대화의 주제는 "무엇이 힘든가"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예린: 선배, 저 그만둘까 봐요.

소성민: 에이, 요즘 같은 때 나가면 힘들어. 일단 갈 데부터 확실히 정하고 움직여.

하예린: 그게… 딱 회사가 싫은 건 아니고요.

소성민: 그럼 팀 옮기는 것도 방법이야. 아니면 휴가를 좀 길게 써 봐. 나도 3년 차 때 똑같았거든? 그때 버텼더니 4년 차부터 확 편해지더라.

하예린: …네, 그렇겠죠. 감사합니다, 선배.

예린 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습니다. 성민 씨는 뿌듯했습니다. 이직처 확보, 부서 이동, 장기 휴가. 선배로서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를 빠짐없이 줬으니까요. 두 사람은 10분도 안 돼 옥상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예린 씨가 한 말 중에 성민 씨가 흘려들은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딱 회사가 싫은 건 아니고요." 그 뒤에 이어졌어야 할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2주 뒤 팀장 책상 위의 사직서, 그리고 처음 들은 진짜 이유

해결책을 받은 사람은 고마워하지만, 이해받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은 다음 결정을 혼자 내립니다.

2주 뒤 월요일 아침, 팀장이 성민 씨를 따로 불렀습니다. 예린 씨가 사직서를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팀장이 전한 퇴사 사유를 듣는 순간, 성민 씨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팀장: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래. 요즘 데이터 분석 쪽 공부를 혼자 하고 있는데, 거기가 더 맞는 것 같다고. 근데 개발팀에 있으면 그쪽으로 갈 길이 안 보인다고 하더라.

소성민: 데이터요? 우리 회사 데이터팀 올해 인원 뽑는 거 아세요?

팀장: 알지. 근데 예린이는 몰랐나 봐. 사직서 수리하기 전에 성민 씨가 한 번 얘기해 볼래?

성민 씨는 그 금요일 저녁을 떠올렸습니다. "딱 회사가 싫은 건 아니고요." 그 말 뒤에 기다리고 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민 씨가 세 개의 정답을 내놓는 동안, 예린 씨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차례를 얻지 못했던 겁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상대가 너무 빨리 답을 주는 바람에, 정작 하려던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네, 그럴게요"로 끝났던 경험. 그런데 조언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조언을 서두를까요? 연구자들은 뜻밖의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조언하는 사람이 얻는 뜻밖의 보상, 권력감을 밝힌 연구

조언을 하면 조언하는 사람 스스로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에게 필요해서라기보다, 내가 그 기분이 좋아서 조언을 서두르기도 합니다.

마이클 셰러와 리 토스트 연구팀은 2018년, 실험 두 번과 실제 조직 현장 연구, 협상 모의실험까지 네 차례의 연구로 조언의 숨은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조언을 한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느끼면서 권력감이 높아졌고, 평소 권력을 원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조언을 더 많이 했습니다.

권력감(sense of power) —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감각입니다. 실제 직책과 별개로,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성민 씨가 3분 만에 선택지 세 개를 내놓고 느낀 뿌듯함에는, 선배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이 감각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 연구가 조언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조언이 나오는 순간을 한 번 의심해 볼 이유를 줍니다. 지금 이 조언은 상대의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위한 것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조언이 튀어나오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조언과 바꿔 말하기, 상대가 "이해받았다"고 느낀 쪽은 달랐다

조언을 받은 사람도 대화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나를 이해했다"는 느낌은 조언보다, 내 말을 제 말로 바꿔 되돌려 주는 반응에서 더 크게 나왔습니다.

해리 웨거 연구팀은 2014년, 115명의 참가자가 훈련받은 대화 상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상대의 반응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말을 바꿔 되돌려 주며 더 이야기하도록 격려하는 반응, 조언하는 반응,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응답만 하는 반응. 그 결과 참가자들은 첫 번째 반응을 받았을 때 가장 이해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 — 상대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들은 내용을 되돌려 주고 더 말하도록 이끌어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듣기 방식입니다. 심리치료와 상담에서 오래 강조되어 온 기술로, 직장과 일상 대화에서도 널리 권장됩니다. 성민 씨의 첫 번째 대화에는 선배다운 조언은 있었지만, 적극적 경청은 없었습니다.

바꿔 말하기(paraphrasing) — 상대가 한 말의 핵심을 내 표현으로 다시 정리해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아?"를 담아 들려주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딱 회사가 싫은 건 아니고요"를 "회사보다는 지금 하는 일이 문제라는 거지?"로 되돌려 줬다면, 예린 씨의 진짜 이유는 그날 옥상에서 나왔을 겁니다.

흥미로운 건, 대화 만족도에서는 조언과 적극적 경청이 비슷했다는 점입니다. 조언을 받은 사람도 대화가 나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예린 씨가 "감사합니다, 선배"라고 말한 것도 진심이었을 겁니다. 다만 고마움과 이해받았다는 느낌은 다른 것이었고, 사직서는 그 차이 사이에서 쓰였습니다.

후배가 필요했던 건 답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비춰 볼 거울이었다

판단하지 않고 공감하며 들어 주는 사람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방어를 풀고 자기 생각의 서로 다른 면을 동시에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은 오히려 더 또렷해집니다.

히브리대의 가이 이츠차코프와 아브라함 클루거 연구팀은 2017년, 네 차례의 실험에서 공감적이고 판단하지 않는 듣기가 말하는 사람의 생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폈습니다. 이런 듣기를 경험한 사람은 사회적 불안이 줄었고, 방어적인 태도가 누그러지면서 자기 생각 안의 모순을 더 잘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순을 불편해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고품질 경청(high-quality listening) — 주의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판단을 내려놓은 채 듣는 것을 가리키는 연구 개념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 "이 사람 앞에서는 평가받지 않는다"는 안전감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해결책을 서두르는 순간, 듣기는 이 조건 중 "판단을 내려놓은 채"를 놓치게 됩니다.

방어적 처리(defensive processing) — 내 생각이 공격받거나 평가받을 것 같을 때, 불편한 정보는 밀어내고 원래 생각을 지키는 쪽으로 머리를 쓰는 경향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스스로도 자기 생각의 빈틈을 보지 못합니다. 선배의 조언 앞에서 예린 씨가 "네, 그렇겠죠"로 물러선 것은 이 방어가 작동한 모습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사람의 마음속에 서로 부딪치는 생각이 공존하는 상태를 두 가지로 나눠 측정했습니다. 두 개념은 짝을 이루지만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객관적 양가성(objective ambivalence) — 한 가지 대상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동시에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좋은 듣기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안의 이런 양면을 더 많이 알아차렸습니다. "그만두고 싶다"와 "이 팀이 좋다"가 예린 씨 안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바로 객관적 양가성입니다.

주관적 양가성(subjective ambivalence) — 그런 양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갈팡질팡한다고 느끼는 정도입니다. 이츠차코프 연구팀은 좋은 듣기를 경험한 사람이 양면을 더 많이 알아차리면서도, 그 때문에 덜 괴로워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좋은 듣기는 고민을 없애 주는 게 아니라, 고민의 양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셈입니다.

이듬해 같은 연구팀은 다섯 차례의 실험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좋은 듣기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커진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남을 설득하려는 마음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태도 명료성(attitude clarity) —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정확히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분명하게 아는 정도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이제 좀 알겠다"는 느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좋은 듣기는 이 명료성을 높였고, 이것이 고민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태도 정확성(attitude correctness) — 내 생각이 옳고 타당하다고 믿는 정도입니다. 명료성과 함께 확신을 이루는 요소지만, 연구에서 좋은 듣기는 이 정확성에 대한 믿음은 높이지 않았습니다. 들어 주는 사람 앞에서 사람은 "내가 맞다"는 고집이 아니라 "내 생각이 이거구나"라는 선명함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두 마음을 함께 비추자, 대화의 방향을 쥔 건 입을 다문 선배였다

잘 듣는 사람은 말을 아끼지만, 무엇을 되비출지는 스스로 고릅니다. 상대의 말 중 어느 조각을 비추느냐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느 쪽으로 정리될지를 이끕니다.

그날 저녁, 성민 씨는 다시 예린 씨를 옥상으로 불렀습니다. 이번엔 올라가는 계단에서 스스로에게 규칙 하나를 정했습니다. 예린 씨가 먼저 묻기 전까지는, 조언하지 않는다.

소성민: 지난번에 내가 너무 빨리 답을 줬던 것 같아. 오늘은 그냥 들을게.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회사가 싫은 건 아니라고 했잖아.

하예린: 네… 팀은 좋아요. 사람들도 좋고. 근데 요즘 코드 짜는 시간보다, 퇴근하고 데이터 공부하는 시간이 더 기다려져요.

소성민: 그러니까 떠나고 싶은 건 이 회사가 아니라, 지금 하는 일 쪽이라는 거네?

하예린: …네, 그런 것 같아요. 말로 하니까 좀 더 분명해지네요.

소성민: 새 분야로 가 보고 싶은 마음이랑, 여기 사람들을 두고 가는 게 아까운 마음이 같이 있는 것 같아.

하예린: 맞아요. 그래서 사직서 내고도 계속 찜찜했어요.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소성민: 지금 이렇게 얘기하면서, 좀 더 분명해진 게 있어?

하예린: 제가 원하는 건 퇴사가 아니라, 데이터 일을 해 보는 거였나 봐요. 선배, 혹시… 사내에서 데이터팀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해요?

그제야 성민 씨는 데이터팀 채용 소식을 꺼냈습니다. 같은 정보였지만, 이번엔 예린 씨가 먼저 물었기에 조언이 아니라 대답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예린 씨는 팀장에게 사직서를 보류해 달라고 요청하고, 사내 이동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옥상에서 성민 씨는 말을 많이 했지만, 대화의 방향은 예린 씨의 "네, 그렇겠죠"가 정했습니다. 두 번째 옥상에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지만, 어떤 조각을 비출지는 성민 씨가 골랐습니다. "회사가 싫은 게 아니라고 했잖아"로 첫 실마리를 비추고, "두 마음이 같이 있는 것 같아"로 양쪽을 함께 비췄습니다. 답은 예린 씨가 찾았지만, 그 답으로 가는 길의 조명은 성민 씨가 들고 있었습니다.

Ep 003에서는 걱정을 대화의 마지막 순서로 미루는 법을 다뤘습니다. 이번 회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답 자체를 상대가 찾도록 비춰 주는 듣기입니다. 이 방식을 "반사판 경청법"이라 부르겠습니다. 사진가의 반사판은 스스로 빛을 만들지 않지만, 빛을 되비춰 인물의 얼굴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듣는 사람도 답을 만들어 주지 않고, 상대의 말을 되비춰 그 사람의 생각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겁니다.

핵심 포인트

잘 듣는 사람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비춰 주는 사람입니다. 바꿔 말해 되비추고, 두 마음을 함께 비추고, 조언 대신 정리 질문을 던지세요.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반사판 경청법은 내가 원하는 결론 쪽만 골라 비춰 상대를 유도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성민 씨가 "남고 싶은 마음"만 되비추며 퇴사를 막으려 했다면, 그건 듣기가 아니라 조작입니다. 반드시 상대 안의 양쪽 마음을 공정하게 비추세요. 또 상대가 "선배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라고 분명히 조언을 청한다면, 그때는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맞습니다. 비추기만 하며 끝까지 답을 피하면 상대는 떠밀려 혼자 남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 세 문장을 놓치면, 좋은 선배도 조언하는 사람으로만 남습니다

반사판 경청법은 세 개의 문장으로 연습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답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재료로 쓰는 문장입니다.

내 말로 바꿔 되비추기

"그러니까 ○○보다는 △△가 더 걸린다는 거지?" 상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고, 내가 이해한 핵심을 내 표현으로 정리해 확인합니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상대가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고쳐 주는 순간 이야기는 더 깊어집니다. 배우자와의 대화라면 "그러니까 내가 늦는 것보다 연락이 없는 게 더 서운했던 거네?",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에게라면 "들어 보니까 연애가 힘든 게 아니라 확신이 없는 게 힘든 거구나?"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두 마음을 한 문장에 함께 비추기

"○○하고 싶은 마음이랑, △△한 마음이 같이 있는 것 같네."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한쪽 마음만 말하면서도 다른 쪽 마음에 붙잡혀 있습니다. 양쪽을 모두 비춰 주면, 상대는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둘 다 들여다볼 수 있게 됩니다. 이사를 고민하는 형제에게라면 "새 동네로 가고 싶은 마음이랑, 지금 이웃들이 아까운 마음이 둘 다 있구나", 결혼을 망설이는 친구에게라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랑 지금의 자유가 아까운 마음이 같이 있는 거네"로 쓸 수 있습니다.

조언 대신 정리 질문 던지기

"지금 이렇게 얘기하면서, 좀 더 분명해진 게 있어?" 조언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조언 대신 이 질문을 던집니다. 상대는 방금 자기가 한 말을 다시 들여다보며 스스로 결론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팀원이 업무 고민을 털어놓을 때라면 "말로 풀어 보니까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느껴져요?", 부모님이 노후 걱정을 꺼낼 때라면 "이야기하시다 보니까 제일 마음에 걸리시는 게 뭐예요?"로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의 훈련

오늘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조언이 떠오르는 순간 속으로 "지금 이 조언은 누구를 위한 걸까?"를 한 번 묻고, 대신 첫 번째 문장인 "그러니까 ○○라는 거지?"로 되비춰 보세요.

써먹기 좋은 자리: 후배나 동료가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라고 청해 온 순간, 퇴근 후 가족이 하루의 속상한 일을 꺼내는 저녁.

상대가 먼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기 전까지 조언을 참아 보세요. 대화가 끝난 뒤, 상대가 스스로 내린 결론이 있었는지 기억해 두세요.

예린 씨가 먼저 계단을 내려간 뒤, 옥상 벤치에는 식어 버린 커피 두 잔만 남았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빈 벤치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성민 씨의 입가에는 그날 끝내 꺼내지 않은 조언 하나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 자리는 이제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듣기는 상대에게 답을 건네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안의 답을 볼 수 있게 빛을 되비추는 일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면요? 매주 전화할 때마다 똑같은 불평을 늘어놓는 어머니의 말 속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비추기만 해도 생각이 정리된다는 연구,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반사판 경청법은 네 편의 연구 위에 서 있습니다. 각 연구가 확인한 범위와, 직장 선후배의 대화에 옮길 때 조심할 점을 나눠 보겠습니다.

근거 정리

조언을 하는 행동은 상대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느낌을 통해 조언하는 사람의 권력감을 높였고, 권력을 원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조언을 더 많이 했습니다(Schaerer 외, 2018).

115명이 참여한 실험에서 적극적 경청 반응을 받은 사람은 조언이나 짧은 응답을 받은 사람보다 더 이해받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대화 만족도와 상대에 대한 호감은 적극적 경청과 조언 사이에 차이가 없었습니다(Weger 외, 2014).

공감적이고 판단하지 않는 듣기는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불안과 방어를 줄였고, 자기 생각의 양면을 더 알아차리면서도 덜 괴로워하게 만들었습니다(Itzchakov 외, 2017).

좋은 듣기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다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료성이 높아졌습니다(Itzchakov 외, 2018).

웨거 연구는 처음 만난 사람끼리의 대화였고, 대화 상대는 훈련받은 연구 보조자였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선후배, 특히 선배가 그 분야의 경험을 가진 경우라면 조언의 가치가 더 클 수 있습니다. 조언을 무조건 피하라는 게 아니라, 이해받았다는 느낌이 먼저라는 점이 이 연구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입니다.

이츠차코프 연구팀의 실험은 실험실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퇴사처럼 삶을 바꾸는 큰 결정에서도 같은 효과가 똑같은 크기로 나타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2017년 연구에서는 원래 사회적 불안이 높은 사람에게서 효과가 더 컸다고 보고됐습니다.

셰러 연구팀의 결과는 조언하는 사람이 느끼는 권력감에 관한 것이지, 조언을 받은 사람에게 해롭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하예린 씨의 사례처럼 좋은 결말이 늘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비춰 준 끝에 상대가 떠나기로 결정한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것까지가 반사판 경청법입니다.

생각해보기

후배가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선배는 어떻게 들어야 할까?

해결책을 꺼내기 전에 후배의 말 중 가장 의외였던 한 문장을 찾아 되비춰 보세요. "회사가 싫은 건 아니다" 같은 문장 뒤에 진짜 이유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왜 고민을 들으면 조언부터 하고 싶어질까?

최근 조언을 건넨 순간의 기분을 떠올려 보세요. 상대의 문제가 풀려서 기뻤는지, 내가 도움이 됐다는 느낌이 좋았는지 구분해 보면 조언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나는 이 대화에서 답을 정해 주고 있는가, 상대가 답을 찾도록 비추고 있는가?

대화가 끝난 뒤 결론을 말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려 보세요. 상대의 입에서 결론이 나왔고, 그 결론으로 가는 조각을 내가 골라 비췄다면 방향을 잡은 것은 나였습니다.

상대가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한쪽으로 결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두 마음이 같이 있는 것 같네"라고 양쪽을 함께 비춰 보세요. 둘 다 있어도 괜찮다는 걸 느끼면, 상대는 오히려 더 차분하게 정리합니다.

상대가 분명히 조언을 청하면 그래도 참아야 할까?

아닙니다. 상대가 먼저 물었다면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전에 "지금 어디까지 정리됐어?"를 한 번 물으면, 내 조언이 상대의 생각 위에 얹힐 자리를 찾기 쉬워집니다.

참고 자료

Schaerer, M., Tost, L. P., Huang, L., Gino, F., & Larrick, R., 「Advice Giving: A Subtle Pathway to Powe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2018) — 원문 보기

Weger, H., Castle Bell, G., Minei, E. M., & Robinson, M. C., 「The Relative Effectiveness of Active Listening in Initial Interactions」, International Journal of Listening(2014) — 원문 보기

Itzchakov, G., Kluger, A. N., & Castro, D. R., 「I Am Aware of My Inconsistencies but Can Tolerate Them: The Effect of High Quality Listening on Speakers' Attitude Ambivalenc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2017) — 원문 보기

Itzchakov, G., DeMarree, K. G., Kluger, A. N., & Turjeman-Levi, Y., 「The Listener Sets the Tone: High-Quality Listening Increases Attitude Clarity and Behavior-Intention Consequenc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2018) —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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