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본 원리 Ep 011 거름망 듣기법, 반복되는 불평 속 진심

대화의 기본 원리  >  듣기의 기술  >  반복 속 호소 거르기  ·  중급

이번 회차 학습 목표: 같은 불평이 반복될 때 그 말이 사실은 해결을 바라는 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반복되는 말 속에서 진짜 호소를 걸러 내 확인하는 법을 익힙니다. Ep 010이 상대가 꺼낸 속마음을 되비추는 듣기였다면, 이번에는 속마음이 직접 말해지지 않고 반복되는 불평 속에 숨어 있을 때 그 핵심을 찾아내는 쪽으로 한 단계 심화합니다.

이번 회차의 한 문장

오늘부터 같은 불평이 또 시작되면, 해결책을 꺼내기 전에 그 말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단어 하나를 먼저 건져 올리게 됩니다.

같은 불평을 열 번 들었다면, 그 말은 정말 같은 말일까요?

서울에서 일하는 서른여섯 김태오 씨는 매주 일요일 밤 8시에 부산의 어머니께 전화를 겁니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이어 온 습관입니다. 그런데 요즘 태오 씨는 일요일 저녁이 조금 버겁습니다. 통화가 시작되면 늘 같은 이야기가, 같은 순서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매주 같은 불평, 듣는 쪽도 말하는 쪽도 지쳐 가고 있었다

같은 불평이 반복되는 대화에서는 듣는 사람만 지치는 게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도 매번 원하지 않는 대답을 받으며 조금씩 지쳐 갑니다. 반복은 대개 아직 제대로 받아 주지 못한 말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황영숙: 윗집이 또 공사한다. 혼자 있으니까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못 살겠다.

김태오: 엄마,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보셨어요? 공사 시간 정해져 있을 거예요.

황영숙: 됐다, 그런 거 아니다. 그리고 무릎이 또 아파서 혼자 시장 가기가 힘들어.

김태오: 그러니까 정형외과 가 보시라니까요. 제가 병원 예약해 드릴까요?

황영숙: 됐다니까. 요즘은 혼자 밥 해 먹기도 귀찮고.

김태오: 그럼 반찬 배달 시켜 드릴게요. 제가 앱으로 매주 보내 드리면 되잖아요.

태오 씨는 매주 이렇게 답했습니다. 관리사무소, 병원, 반찬 배달.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도 매주 같았습니다. "됐다, 그런 거 아니다." 통화는 20분쯤 이어지다 어머니의 "그래, 바쁜데 끊어라"로 끝났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도 매번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해결책을 드리면 "그런 거 아니다"로 돌아오고, 다음번엔 또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화. 태오 씨는 결국 한 가지 결단을 내렸습니다. 말로 안 되니 행동으로 보여 드리자.

"이제 전화 안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해결책은 몇 번이나 거절당했을까

원하지 않는 해결책을 반복해서 받은 사람은, 결국 말하기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 포기는 대개 가장 서운한 말의 모양으로 나옵니다.

태오 씨는 어머니께 묻지 않고 반찬 정기 배달을 신청했습니다. 첫 배달이 간 다음 날, 배달 업체에서 구독이 해지됐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 주 일요일 밤, 태오 씨가 전화를 걸자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용했습니다.

김태오: 엄마, 반찬 왜 해지하셨어요? 편하시라고 한 건데.

황영숙: 내가 반찬 없어서 그랬나. 됐다.

김태오: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말씀을 해 주셔야 알죠.

황영숙: 아니다. 너도 바쁜데 이제 일요일마다 전화 안 해도 된다.

전화를 끊고 태오 씨는 한참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매주 성실하게 전화했고, 매번 진지하게 방법을 찾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전화 안 해도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불평하는 이유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말합니다.

코왈스키가 정리한 불평의 목적, 해결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불평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일 수도 있지만, 감정을 털어내거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한 말일 때도 많습니다. 불평의 목적을 해결 하나로만 읽으면, 나머지 목적은 모두 놓치게 됩니다.

심리학자 로빈 코왈스키는 1996년, 흩어져 있던 불평 연구를 한데 모아 정리했습니다. 그는 불평을 실제로 느끼는지와 관계없이 불만을 표현하는 말로 정의하고, 그 목적을 감정을 털어내는 것,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얻는 것으로 나눠 봤습니다.

불평(complaint) — 무언가에 대한 불만을 밖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코왈스키는 불평이 반드시 실제 불만의 크기와 일치하지는 않으며, 감정을 털어내거나 공감과 관심을 얻는 등 여러 목적을 위해 쓰인다고 봤습니다. 영숙 씨의 윗집 공사 이야기는 소음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처럼 들렸지만, 그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태오 씨의 대응을 다시 보면 한 가지가 선명해집니다. 태오 씨는 어머니의 모든 불평을 "해결해 달라"는 말로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사무소, 병원, 반찬 배달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불평이 해결이 아닌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면, 그 해결책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과녁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데 숨은 이유 하나

감정이 담긴 경험은 한 번 말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흔든 일을 여러 번, 여러 사람에게 되풀이해 말하는 경향이 있고, 그 반복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벨기에의 심리학자 베르나르 리메는 2009년, 수십 년간 쌓인 연구를 정리하며 감정적인 경험이 거의 언제나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 줬습니다. 이런 공유는 사건 직후부터 시작되고, 대개 반복되며, 여러 사람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그 공유는 개인의 감정 정리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합니다.

정서의 사회적 공유(social sharing of emotion) — 감정을 불러일으킨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며 나누는 과정입니다. 리메는 이것이 감정 경험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정리했습니다. 영숙 씨가 매주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보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다 나누지 못한 감정을 다시 나누려는 시도였을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반복은 고장 난 레코드가 아닙니다. 같은 노래를 다시 틀어 달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아직 그 노래를 함께 들어 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 필요했던 건 정보가 아니라, 함께 느껴 줄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을 짧게 느낄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보다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와 순간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같은 대화도 세대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스탠퍼드의 로라 카스텐슨 연구팀은 1999년,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시간에 대한 감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론을 정리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넉넉하다고 느끼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쪽을,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느끼면 감정을 채우는 쪽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 — 사람이 인생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관계에서 무엇을 우선할지가 달라진다는 이론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시간을 제한적으로 느끼게 되지만, 연구팀은 젊은 사람도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비슷한 변화를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영숙 씨의 전화와 태오 씨의 대답이 계속 어긋난 배경에는, 두 사람이 대화에서 찾는 것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관계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짝을 이루는 개념이지만, 한 통화 안에서도 서로 부딪칠 수 있습니다.

지식 관련 목표(knowledge-related goals) — 대화와 관계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하고, 앞날을 준비하려는 목표입니다. 바쁘게 일하며 앞날을 계획하는 시기에 특히 강해집니다. 태오 씨가 매번 관리사무소와 병원과 배달 앱을 꺼낸 것은 바로 이 목표의 언어였습니다.

정서 관련 목표(emotion-related goals) — 관계를 통해 따뜻함과 연결감을 느끼고, 지금의 감정을 의미 있게 채우려는 목표입니다.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느낄수록 이 목표가 앞자리로 옵니다. 영숙 씨의 불평은 이 목표의 언어로 쓰여 있었는데, 태오 씨는 그것을 지식 목표의 언어로 번역해 답하고 있었습니다.

사실만 듣는 귀와 호소를 듣는 귀는, 같은 말에서 다른 것을 건진다

한 문장에는 사실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어느 층을 듣느냐에 따라 같은 말이 전혀 다른 대화로 이어집니다.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심리학자 프리데만 슐츠 폰 툰은 1981년 저서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네 개의 측면으로 나눠 보는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학술 실험에서 나온 이론이라기보다 상담과 교육 현장에서 다듬어진 실용 모형이지만, 반복되는 불평을 해부하기에 좋은 틀입니다.

네 측면 모형(four-sides model) — 한 사람이 하는 모든 말에는 네 가지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고 보는 커뮤니케이션 모형입니다. 듣는 사람은 그중 어느 측면에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같은 말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이번 회차의 사례는 네 측면 중 한 측면만 들은 대화가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실 측면(factual side) — 말에 담긴 객관적인 정보입니다. "윗집이 공사한다"에서는 소음이 있다는 사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태오 씨는 매주 이 측면만 들었기에, 대답도 늘 사실을 해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자기 표현 측면(self-revelation side) — 말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의도하든 안 하든, 말에는 그 사람의 상태와 감정이 묻어납니다. "혼자 있으니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소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는 영숙 씨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관계 측면(relationship side) —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어떻게 여기는지,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가 드러나는 측면입니다. 말투나 누구에게 그 말을 하는지에서 주로 읽힙니다. 영숙 씨가 이 이야기를 매주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에게 한다는 것 자체가, 아들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긴다는 표시였습니다.

호소 측면(appeal side) —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 곧 "그래서 네가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측면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반복되는 말 속에 숨어 있곤 합니다. 영숙 씨의 불평 속 호소는 "해결해 달라"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어 달라"에 가까웠습니다.

"혼자"라는 단어 하나를 건지자, 통화의 주도권이 아들에게 돌아왔다

반복되는 불평에서 핵심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용이 아니라 반복되는 단어를 보는 것입니다. 그 단어를 건져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순간, 대화는 되풀이되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전화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그 주, 태오 씨는 지난 몇 달간의 통화를 떠올려 메모지에 적어 봤습니다. 윗집 공사, 무릎, 반찬, 시장. 주제는 매번 달랐습니다. 그런데 메모를 다시 읽다가 태오 씨는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불평에 같은 단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혼자 있으니까, 혼자 시장 가기가, 혼자 밥 해 먹기가. 다음 일요일, 태오 씨는 약속대로 8시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태오: 엄마, 전화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했어요. 저 요즘 엄마 얘기 들으면서 하나 눈에 띄는 게 있었어요.

황영숙: 뭐가.

김태오: 공사 얘기든 무릎 얘기든, 엄마 말씀 끝에 "혼자"라는 말이 꼭 붙더라고요. 혹시 요즘 많이 적적하세요?

황영숙: …(한참 조용하다가) 니 아버지 가고 나서, 일요일이 제일 길다.

김태오: 그러셨구나. 제가 그동안 자꾸 해결책만 말씀드렸네요. 엄마는 제가 뭘 해 드리면 제일 좋겠어요? 그냥 이렇게 들어 드리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뭔가 같이 해 드렸으면 좋겠어요?

황영숙: 반찬 같은 거 필요 없다. 그냥… 다음 달에 한 번 내려와서 밥이나 같이 먹자. 니 아버지 좋아하던 국밥집에서.

그날 통화는 한 시간을 넘겼습니다. 영숙 씨는 처음으로 윗집 공사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태오 씨의 아버지와 처음 그 국밥집에 갔던 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오 씨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몇 달 동안 태오 씨는 매주 성실하게 대답했지만, 통화의 방향은 늘 어머니의 불평과 "됐다"가 정했습니다. 이번엔 반복되는 단어 하나를 건져 올려 확인했고, 그 한 문장이 통화가 흘러갈 곳을 바꿨습니다. 불평의 표면에서 맴돌던 대화를 그 아래의 호소로 끌어내린 것은, 해결책을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아들이 아니라 반복을 가장 주의 깊게 들은 아들이었습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이 방식을 "거름망 듣기법"이라 부르겠습니다. 반복되는 불평을 거름망에 붓듯 들으며, 이미 아는 사실은 흘려보내고, 매번 걸리는 단어 하나를 건져 올리고, 그 단어에 담긴 호소를 질문으로 확인하는 겁니다.

핵심 포인트

반복되는 말은 같은 내용이 아니라, 아직 받아 주지 않은 같은 호소입니다. 주제가 바뀌어도 매번 남는 단어 하나를 찾고, 그 단어가 가리키는 바람을 추측으로 단정하지 말고 질문으로 확인하세요.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모든 불평 뒤에 숨은 호소가 있는 건 아닙니다. 무릎이 정말 많이 아프다면, 그건 병원에 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거름망 듣기는 해결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해결만 듣다 호소를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외로우신 거죠?"처럼 단정해 버리면 상대는 속을 들킨 것 같아 오히려 문을 닫습니다. 반드시 "혹시 ○○하세요?"처럼 틀릴 수 있는 질문으로 조심스럽게 꺼내세요.

이 세 문장을 놓치면, 같은 불평은 다음 주에도 돌아옵니다

거름망 듣기법은 세 개의 문장으로 연습할 수 있습니다. 반복을 짚고, 바람을 확인하고, 상대가 원하는 방식의 응답을 고르게 하는 순서입니다.

반복되는 단어를 그대로 짚어 주기

"요즘 얘기마다 ○○라는 말이 자주 나오네요." 불평의 주제가 아니라 주제를 가로질러 반복되는 단어를 돌려줍니다. 상대는 자기도 몰랐던 말버릇을 듣고, 그 단어 아래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연인에게라면 "요즘 네 얘기에 '피곤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 같아", 팀원에게라면 "요즘 회의 때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시네요"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호소를 틀릴 수 있는 질문으로 확인하기

"혹시 요즘 ○○하세요?" 짚어 낸 단어가 가리키는 마음을 추측하되, 단정하지 않고 상대가 고쳐 줄 수 있게 질문으로 건넵니다. 틀렸다면 상대가 정답을 알려 줄 것이고, 맞았다면 상대는 비로소 이해받았다고 느낍니다. 매번 직장 상사 흉을 보는 친구에게라면 "혹시 요즘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매번 집안일 이야기를 하는 배우자에게라면 "혹시 내가 알아봐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한 거야?"로 쓸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응답 방식을 상대에게 고르게 하기

"제가 뭘 해 드리면 좋을까요? 들어 드리는 게 좋으세요, 같이 뭔가 해 드리는 게 좋으세요?" 해결책을 먼저 정해 버리지 않고, 상대가 바라는 응답의 모양을 직접 묻습니다. 상대의 대답이 곧 가장 정확한 해결책이 됩니다. 힘든 한 주를 보낸 친구에게라면 "오늘은 얘기만 들을까, 아니면 같이 방법을 찾아볼까?", 속상한 일을 꺼낸 동생에게라면 "위로가 필요해, 아니면 조언이 필요해?"로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의 훈련

늘 같은 불평을 하는 사람을 한 명 떠올리고, 최근 그 사람이 한 불평 세 가지를 메모지에 적어 보세요. 주제가 아니라 세 불평에 공통으로 붙어 있는 단어 하나를 찾아 동그라미를 쳐 보세요.

써먹기 좋은 자리: 이번 주 부모님과의 통화, 매번 같은 고민을 꺼내는 친구와의 만남.

다음 대화에서 그 단어가 또 나오면, 해결책 대신 첫 번째 문장인 "요즘 ○○라는 말이 자주 나오네요"로 조용히 짚어 보세요.

통화를 끊은 태오 씨는 달력 앱을 열어 다음 달 둘째 주 토요일에 "부산, 엄마, 국밥집"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 이야기를 잊기 전에, 메모장에 한 줄씩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통화에서 "지난번에 말한 그 집 있잖아"라는 말이 나오면, 이번엔 바로 알아듣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그 말을 제대로 들어 준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그런데 호소를 찾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 달 전에 들은 작은 이야기를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 누군가 "지난번에 말한 그거"라고 할 때, 그걸 기억하는 사람과 잊어버린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요?

"불평 뒤엔 늘 숨은 호소가 있다"고 믿으면 곤란한 이유, 연구가 말하는 조건

거름망 듣기법은 네 가지 자료 위에 서 있지만, 그중에는 실험 연구도 있고 현장에서 다듬어진 모형도 있습니다. 각각이 어디까지 말해 주는지 나눠 보겠습니다.

근거 정리

불평은 실제 불만의 크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불만의 표현이며, 감정을 털어내거나 개인 내적 목표나 대인 관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쓰인다는 정리가 있습니다(Kowalski, 1996).

감정적인 경험은 대개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이어지며, 이런 공유는 반복적으로, 여러 사람을 향해 일어나고, 사람 사이를 잇는 효과를 낳는다고 정리됐습니다(Rimé, 2009).

남은 시간을 제한적으로 느낄수록 사람들은 정보를 얻는 목표보다 정서적 목표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과 근거가 제시됐습니다(Carstensen 외, 1999). 한 메시지를 네 측면으로 나눠 보는 틀은 슐츠 폰 툰의 1981년 저서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의

코왈스키와 리메의 글은 기존 연구를 종합한 리뷰로, "반복되는 불평은 곧 숨은 호소"라는 공식을 증명한 실험은 아닙니다. 불평이 반복되는 이유에는 호소 말고도 습관, 실제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 건강 상태의 변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카스텐슨의 이론은 나이에 따른 평균적인 경향을 설명할 뿐, 모든 부모님이 정서적 목표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해결책을 반기는 어른도 많습니다. 세대를 기준으로 상대를 단정하기보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를 직접 묻는 것이 우선입니다.

슐츠 폰 툰의 네 측면 모형은 상담과 교육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실용적인 틀이지만, 실험으로 효과가 검증된 심리학 이론은 아닙니다. 대화를 해부하는 렌즈로 쓰되, 과학적 법칙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정확합니다.

생각해보기

부모님이 매번 같은 불평을 할 때는 어떻게 들어야 할까?

최근 들은 불평 세 가지를 떠올려 주제가 아니라 공통으로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보세요. 그 단어가 부모님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의 입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해결책을 드려도 "그런 거 아니다"라는 말이 돌아온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 불평이 해결을 바라는 말이었는지, 감정을 나누고 싶은 말이었는지 돌아보세요. 해결책이 계속 거절된다면, 상대가 바라는 응답의 모양 자체가 다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대화의 방향을 정하고 있는가, 같은 궤도를 따라 돌고 있는가?

매주 같은 불평에 매주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면, 대화의 방향은 반복이 정하고 있는 겁니다. 반복되는 단어 하나를 짚는 순간, 방향을 바꾸는 사람은 내가 됩니다.

상대의 속마음을 짐작했는데 틀리면 어떡하지?

단정하지 말고 "혹시 ○○하세요?"처럼 틀릴 수 있는 질문으로 건네세요. 틀렸다면 상대가 고쳐 줄 것이고, 그 고쳐 준 말이 곧 진짜 호소입니다.

가족의 반복되는 이야기가 지겹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겨움은 내가 들을 만큼 들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아직 다른 층을 듣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사실은 흘려보내고, 그 말에 담긴 마음과 바람을 들어 보겠다고 마음먹어 보세요.

참고 자료

Kowalski, R. M., 「Complaints and complaining: Functions, antecedents, and consequences」, Psychological Bulletin(1996) — 원문 보기

Rimé, B., 「Emotion Elicits the Social Sharing of Emotion: Theory and Empirical Review」, Emotion Review(2009) — 원문 보기

Carstensen, L. L., Isaacowitz, D. M., & Charles, S. T., 「Taking time seriously: A theory of socioemotional selectivity」, American Psychologist(1999) — 원문 보기

Schulz von Thun, F., 「Miteinander reden 1: Störungen und Klärungen」, Rowohlt(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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