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장면으로 묻기, "왜 안 되는데?"가 진짜 이유를 숨기게 만드는 이유

"그건 좀 곤란한데." 남편 지석훈 씨가 이 말을 한 지 20분째, 거실 소파 위에서는 같은 질문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왜? 대체 왜 안 되는데?"

아내 은다솜 씨는 질문할수록 답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녀가 던진 '왜'는 이유를 꺼내는 질문이 아니라, 이유를 숨기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글의 학습 목표

Ep 10까지 숫자를 세우고 꺼내고 움직이는 법을 다뤘다면, 이번 회차부터는 상대가 숫자 대신 "곤란하다"는 말로 막아설 때로 넘어가 앞선 국면을 심화합니다. 읽고 나면 '왜'라는 질문이 왜 상대를 방어 모드로 밀어 넣는지 설명할 수 있고, 거절처럼 들리는 말 뒤의 진짜 사정을 꺼내는 질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부동산 앱이 켜진 거실의 20분

결혼 5년 차, 전세 만기를 넉 달 앞둔 부부의 거실. 거실 탁자 위 태블릿에는 부동산 앱이 열려 있었고, 화면 속 지도에는 은다솜 씨가 찜해둔 신도시 아파트 세 곳에 빨간 핀이 꽂혀 있었습니다. 새 아파트, 넓은 공원, 그녀의 회사까지 지하철 한 번.

은다솜 여기 어때? 공원도 바로 앞이고 가격도 괜찮아.

지석훈 음… 그건 좀 곤란한데.

은다솜 왜? 왜 곤란한데?

지석훈 출퇴근이 너무 멀잖아.

은다솜 광역버스 타면 지금이랑 15분 차이야. 내가 다 찾아봤어. 그거 말고 진짜 이유가 뭔데?

지석훈 그냥 싫다고. 왜 자꾸 몰아붙여?

대화는 거기서 끊겼습니다. 지석훈 씨는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은다솜 씨는 빨간 핀 세 개가 꽂힌 화면을 혼자 내려다봤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이사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알아야 설득하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은다솜 씨의 접근은 상식적이었습니다. 상대가 반대하면 이유를 묻는다. 이유를 알면 그 이유를 해결해준다. 그러면 반대할 이유가 사라진다.

실제로 그녀는 첫 번째 이유를 해결했습니다. 출퇴근 15분 차이라는 데이터까지 준비해서요. 그런데 이유가 해결되자 대화는 풀리지 않고 오히려 막혔습니다. 처음 꺼낸 이유가 진짜 이유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라는 질문은 이유가 아니라 변명을 요구한다

이 장면의 대화 구조를 따라가면, '왜'가 세 단계에 걸쳐 진짜 이유를 더 깊이 묻어버리는 과정이 보입니다.

첫 단계는 정당화 요구입니다. "왜 곤란한데?"는 상대에게 '당신의 반대가 타당하다는 걸 증명하라'는 과제를 줍니다. 증명해야 하는 사람은 가장 그럴듯한 이유, 반박당해도 체면이 덜 상하는 이유를 고릅니다. 지석훈 씨가 꺼낸 '출퇴근'이 그런 이유였죠.

두 번째 단계는 반박입니다. 은다솜 씨는 그 이유를 데이터로 깨뜨렸습니다. 논리로는 이겼지만, 상대에게 남은 메시지는 '네 이유는 틀렸다'였습니다. 이유가 반박당한 사람은 다음 이유를 꺼내기보다 입을 닫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입장 고착입니다. "그냥 싫다고"는 이유가 바닥났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이유를 내놓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때부터 대화는 이사 지역이 아니라 '누가 이기느냐'를 두고 벌어집니다.

입장과 이해관계

Fisher와 Ury가 『Getting to Yes』에서 구분한 개념으로, 입장(position)은 겉으로 내세우는 요구이고 이해관계(interest)는 그 요구를 낳은 필요나 걱정입니다. "신도시는 곤란하다"가 입장이라면, 그 아래에는 아직 말로 나오지 않은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이번 회차의 관심은 그 이해관계를 '어떤 질문으로' 꺼내느냐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들었더니 사람들이 스스로 모순을 꺼냈다

Itzchakov, Kluger, Castro는 2017년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에 실린 네 개의 실험에서, 듣는 사람의 태도가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폈습니다.

공감하며 판단하지 않는 높은 질의 듣기는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불안을 낮췄고, 그 덕분에 방어적인 처리 방식이 줄었습니다. 방어가 줄어든 사람들은 자기 생각 안의 모순을 더 잘 알아차렸고, 자기 태도를 덜 극단적으로 표현했으며, 그 모순을 견딜 수 있게 됐습니다. 연구진은 듣기만으로도 사람의 태도 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은다솜 씨의 대화에서는 정확히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질문은 증명을 요구했고, 반박은 판단을 전했습니다. 지석훈 씨의 불안은 올라갔고, 그 결과 그의 태도는 "그냥 싫다"로 더 극단적이 됐습니다.

방어적 처리 (defensive processing)

평가받거나 공격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보다 지금의 생각을 지키는 쪽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자기 안의 망설임이나 모순을 들여다보지 않고, 오히려 입장을 더 단단하게 붙듭니다.

장면으로 묻기, 이유 대신 그림을 꺼내게 하는 질문

이 채널은 이 기법을 '장면으로 묻기'라고 부르겠습니다. 상대에게 이유를 요구하는 대신, 상대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장면을 묻는 방법입니다.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는 정당화가 필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유를 말할 때보다 훨씬 덜 방어적으로 속사정을 꺼냅니다. 세 가지 동작으로 이뤄집니다.

첫째, '왜'를 '어떤 장면'으로 바꿉니다. "왜 곤란해?" 대신 "거기 살게 되면 어떤 게 제일 마음에 걸려?"라고 묻습니다. 앞의 질문은 법정의 질문이고, 뒤의 질문은 상상의 질문입니다.

둘째, 첫 대답을 반박하지 않고 받아 둡니다. 출퇴근이 문제라고 하면 데이터로 깨뜨리는 대신 "출퇴근이 걸리는구나"로 그대로 돌려줍니다. 첫 대답이 안전하게 받아들여져야 두 번째 대답이 나옵니다.

셋째, 장면을 하나 더 넓혀 묻습니다. "그거 말고 또 그려지는 게 있어?"는 진짜 이유를 캐내는 질문이 아니라, 아직 말하지 않은 장면이 있으면 꺼내도 된다는 초대입니다.

"거기 살게 되면, 어떤 게 제일 마음에 걸려?"

"출퇴근이 걸리는구나. 그거 말고 또 그려지는 장면이 있어?"

"그 걱정이 해결된다면, 어떤 동네면 괜찮을 것 같아?"

세 문장 모두 상대의 반대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유를 들은 뒤 곧바로 해결의 방향을 상대에게 맡기는 질문입니다. 반대하던 사람이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기는 거죠.

같은 거실, 두 번째 장면에서 나온 진짜 이유

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에서 지석훈 씨의 진짜 걱정이 나왔습니다.

은다솜 거기 살게 되면, 어떤 게 제일 마음에 걸려?

지석훈 출퇴근이 좀 멀어지는 거.

은다솜 출퇴근이 걸리는구나. 그거 말고 또 그려지는 장면이 있어?

지석훈 …사실 엄마가 요즘 무릎이 안 좋잖아. 지금은 주말에 30분이면 가는데, 거기서는 한 시간 반이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못 갈까 봐.

은다솜 그랬구나. 그 걱정이 해결된다면, 어떤 동네면 괜찮을 것 같아?

지석훈 어머니 댁이랑 같은 노선이기만 하면… 그 옆 신도시는 어때? 거기도 공원 있던데.

"곤란하다"의 정체는 출퇴근이 아니라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드러나자, 신도시를 반대하던 사람이 직접 다른 신도시를 제안했습니다. 은다솜 씨가 원하던 새 아파트와 공원, 지석훈 씨가 지키고 싶던 어머니와의 거리가 한 지도 위에서 만났습니다.

'왜'로 캐물었을 때

남편은 반박하기 쉬운 표면적 이유만 내놓았고, 그 이유가 깨지자 "그냥 싫다"로 입장을 굳혔습니다. 대화는 20분 만에 끊겼고, 진짜 걱정은 끝내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장면으로 물었을 때

두 번째 질문에서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나왔고, 반대하던 남편이 스스로 대안 지역을 제안했습니다. 두 사람의 조건을 모두 담은 선택지가 10분 안에 테이블 위에 올랐습니다.

배우자, 동료, 거래처의 "곤란한데요"

가족이나 배우자 사이의 "곤란하다"는 체면이나 죄책감 같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석훈 씨가 어머니 이야기를 바로 꺼내지 못한 것도 '내 엄마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집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까 봐서였죠. 그래서 가족에게는 장면 질문의 속도를 늦추고, 첫 대답을 받아 주는 두 번째 동작에 더 시간을 써야 합니다.

직장 동료가 "그 일정은 좀 곤란한데요"라고 할 때는 장면을 업무의 단위로 좁히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일정이면 어느 단계에서 막힐 것 같으세요?"처럼 묻는 거죠. 개인적인 상상을 묻는 질문보다 작업 흐름을 묻는 질문이 같은 정보를 덜 부담스럽게 꺼냅니다.

거래처나 고객의 "곤란한데요"에서는 장면 질문이 사생활을 캐묻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이 조건이면 내부에서 어떤 부분이 제일 설득하기 어려우실까요?"처럼 상대 조직 안의 장면으로 묻는 것이 안전합니다.

장면으로 묻기가 상처가 되는 순간

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을 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도 대답이 없다면, 세 번째 질문으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생각나면 나중에 얘기해줘"로 문을 열어두는 것까지가 이 기법의 범위입니다. 장면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면 그것은 초대가 아니라 다른 모양의 심문이 됩니다.

꺼낸 사정을 무기로 쓰는 것도 금지선입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럼 결국 어머니 때문에 내가 손해 보라는 거네"라고 받아친다면, 다시는 그 사람의 진짜 이유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장면으로 묻기는 듣는 태도가 진짜일 때만 작동합니다.

연구의 범위도 짚어둡니다. 2017년 연구는 듣는 사람의 질이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미치는 효과를 실험실에서 검증했고, '왜' 질문과 '장면' 질문을 직접 비교한 것은 아닙니다. 질문의 형태를 바꾸는 설계는 판단받지 않는다고 느낄 때 방어가 줄어든다는 그 결과 위에서 이 채널이 구성한 적용입니다.

이유를 요구하면 변명이 돌아오고, 장면을 물으면 속사정이 돌아옵니다.

그날 밤, 태블릿의 빨간 핀은 하나 지워지고 새로 하나가 꽂혔습니다. 지석훈 씨는 화면을 몇 번 더 넘겨보다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려고 베란다로 걸어 나갔습니다. 창 너머로 그의 등이 오래 보였습니다.

부부는 운이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이 결국 함께 담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회의실에서 마주 앉은 두 부서처럼, 처음부터 서로 원하는 게 정반대라고 믿고 협상을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그 믿음은 정말 사실일까요?

참고 자료

  • Itzchakov, G., Kluger, A. N., and Castro, D. R. (2017). I am aware of my inconsistencies but can tolerate them: The effect of high quality listening on speakers' attitude ambivalenc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3(1), 105–120 — 원문 정보
  • Roger Fisher, William Ury, Bruce Patton, 『Getting to Yes』, Penguin (1981년 초판, 1991년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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