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 CMSN 성향 조용한 조율가, 생각을 모아 부드럽게 말하고 바로 맞추는 성향

APER 대화유형 진단 › 정리가 끝나야 입을 여는 사람들 › 조용한 조율가(CMSN), 조율은 됐는데 내 의견이 사라졌을 때 · 중급

석 달 전에 경고했던 문제가 터지자, 팀장은 "왜 아무도 얘기 안 했냐"고 물었습니다.

얘기한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 경고는 조율안 마지막 장, '추가 검토 사항' 세 번째 줄에 적혀 있었죠. 다만 그 줄에는 누구의 의견인지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회차는 기법부터 꺼내 두겠습니다. 이름은 내 칸 남기기. 여러 의견을 조율한 안에 내 제안의 자리와 이름을 따로 남겨, 조율이 끝난 뒤에도 내 의견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필요한 사람은 CMSN 성향, 조용한 조율가입니다. 해결부터 보고(C), 생각을 모은 뒤 말하고(M), 부드럽게 전하고(S), 어긋나면 바로 맞추는(N) 사람이죠.

이번 회차의 학습 목표

  • 조율을 잘할수록 조율한 사람의 의견이 사라지는 구조를 짚는다
  • 사람들이 할 말을 삼키는 가장 흔한 이유를 연구로 이해한다
  • 조율안 안에 내 제안의 자리와 이름을 남기는 내 칸 남기기를 익힌다

Ep 11의 논객이 근거를 쌓느라 자리를 비웠다면, 이번 회차의 조율가는 자리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비어 있는 것과 묻혀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CMSN 성향 조용한 조율가가 잘하는 것

성향 강점
C 내용문제의 핵심을 빠르게 짚는다
M 숙고정리된 말로 신뢰를 준다
S 돌려상대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말한다
N 바로어긋난 것을 오래 끌지 않고 바로 맞춘다

CMSN 성향은 갈라진 의견을 하나로 묶는 데 탁월합니다. 각자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통분모를 찾고, 누구도 지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정리하죠. 이 사람이 조율한 회의는 다툼 없이 끝납니다. 조직이 '이 사람만 있으면 회의가 돌아간다'고 말하는 유형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조율안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세 팀이 모두 만족한 조율안

신규 멤버십 서비스를 준비하는 TF. 마케팅, 개발, 고객지원 세 팀의 의견이 엇갈리자, 경현수 팀장은 은하린 과장에게 조율을 맡겼습니다. 하린은 일주일 동안 세 팀을 따로 만나 의견을 듣고 정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린에게도 생각이 하나 생겼습니다. 세 팀이 각자 다른 고객 데이터를 쓰고 있어서, 데이터를 먼저 통합하지 않으면 출시 후 혜택 적용이 꼬일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은하린
"세 팀 의견을 모아 보니 공통점이 꽤 있었어요. 출시는 3월, 혜택은 2단계로 가고, 고객지원 매뉴얼은 2월 중에 맞추는 걸로 정리했습니다."

은하린
"아, 그리고 고객 데이터 기준을 통일하는 것도 같이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경현수
"데이터 통합은 개발팀이 일정상 어렵다고 했잖아요. 그건 출시 후에 보죠."

은하린
"네, 그럼 추가 검토 사항으로 넣어 둘게요."

조율안은 그날 오후 확정됐습니다. 세 팀 모두 만족했죠.

석 달 뒤, 출시 첫 주에 혜택 중복 적용 오류가 쏟아졌습니다. 원인은 팀마다 달랐던 고객 데이터였습니다. 긴급 회의에서 경 팀장이 물었습니다. "이거 왜 아무도 미리 얘기 안 했어요?" 하린은 조율안 파일을 열어 마지막 장을 보여 줬습니다. 경 팀장은 그 줄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추가 검토 사항으로 넣어 둘게요"가 의견을 지운 구조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조율하는 사람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자기 의견을 앞세우면 조율이 아니라 자기 안 밀어붙이기가 된다고요. 하린도 그렇게 믿었기에 자기 생각을 가장 조용한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율 과정을 구조로 나눠 보면, 하린의 의견은 세 번에 걸쳐 조금씩 지워졌습니다.

첫째, 내 의견이 다른 의견들 속에 섞였다

돌려 말하는 S는 조율자 역할과 만나면 자기 의견을 다른 의견 사이에 녹여 넣습니다. "같이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는 제안이지만, 누구의 제안인지는 말하지 않는 문장이죠.

마케팅팀의 의견에는 마케팅팀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개발팀의 의견에는 개발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린의 의견에만 이름이 없었습니다. 이름 없는 의견은 지켜 줄 사람도 없습니다.

둘째, 정리한 뒤 말하다 보니 늘 마지막 순서였다

생각을 모은 뒤 말하는 M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 다 나온 뒤에야 입을 엽니다. 그 시점의 발언은 새로운 의견이 아니라 '정리'로 들리기 쉽죠.

하린의 제안도 세 팀 의견을 다 정리한 뒤 "아, 그리고"로 덧붙여졌습니다. 맨 마지막에, 부록처럼요. 팀장의 귀에 그 말은 결정해야 할 안건이 아니라 참고 사항이었습니다.

셋째, 바로 맞추려다 내 몫을 첫 양보로 썼다

어긋나면 바로 맞추는 N은 반대가 나오는 순간 조정에 들어갑니다. 팀장이 "출시 후에 보죠"라고 하자, 하린은 한 문장 만에 자기 제안을 '추가 검토 사항'으로 내렸습니다.

조율자에게 가장 내놓기 쉬운 카드는 자기 몫입니다. 다른 팀의 것을 깎으면 그 팀이 불편해지지만, 내 것을 깎으면 아무도 불편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가장 중요했던 경고가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갔습니다.

사람들은 관계를 지키려고 말을 삼킨다

조직 연구자 엘리자베스 모리슨과 프랜시스 밀리컨은 2000년, 구성원들이 문제를 알면서도 광범위하게 입을 닫는 현상에 '조직 침묵'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조직 침묵(organizational silence)

구성원들이 조직의 문제에 대한 우려, 정보, 의견을 광범위하게 말하지 않고 담아 두는 집단적 현상입니다. 개인의 소심함이 아니라, 관리자의 믿음과 조직 구조가 만든 분위기 속에서 침묵이 기본값이 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3년 뒤 밀리컨, 모리슨, 퍼트리샤 휼린은 직장인 40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대부분이 업무상 걱정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상사에게 꺼내지 않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꼽힌 이유는 부정적으로 비치거나 꼬리표가 붙을까 하는 두려움이었고, 그것이 소중한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 말을 삼키고 있었던 겁니다.

CMSN 성향의 침묵은 조금 더 교묘합니다.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은 하되 들리지 않게 합니다. 하린은 데이터 통합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다만 '조율자가 자기 안을 민다'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이름을 지우고 순서를 미루고 첫 반대에 물러섰죠. 형식은 발언이었지만, 기능은 침묵이었습니다.

내 칸 남기기, 조율안 안에 내 제안의 자리를 만든다

내 칸 남기기는 조율을 멈추라는 게 아닙니다. 세 팀의 의견은 지금처럼 공정하게 모읍니다. 다만 그 조율안 안에 조율자 자신의 칸 하나를 따로 만드는 겁니다.

내 칸 남기기의 세 요소

1. 모든 의견에 출처를 붙인다 · 내 의견만 이름 없이 남지 않도록, 처음부터 전부 출처를 단다
"마케팅팀 의견 / 개발팀 의견 / 고객지원팀 의견 / 조율 담당 제안"

2. 내 칸은 부록이 아니라 안건으로 · "같이 검토해 보면"이 아니라 결정이 필요한 항목으로 올린다
"조율하면서 제가 본 위험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결정이 필요한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3. 첫 반대에 바로 내리지 않는다 · 양보하기 전에 한 번은 위험과 대안을 함께 남긴다
"출시 후로 미루시려면, 미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만 기록에 남겨 두겠습니다."

첫 번째 요소는 중립성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킵니다. 모든 의견에 출처가 붙으면, 조율자의 의견도 '네 번째 의견'으로 공정하게 놓입니다. 숨길 때보다 드러낼 때 더 중립적인 셈이죠.

세 번째 요소는 N의 습관을 바꾸지 않습니다. 결국 맞추는 건 똑같습니다. 다만 맞추기 전에 한 문장을 기록에 남깁니다. 그 한 문장이 석 달 뒤 "왜 아무도 얘기 안 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됩니다.

같은 TF 회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은하린
"세 팀 의견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조율하면서 제가 본 위험이 하나 있어서, 그건 '조율 담당 제안'으로 따로 올렸습니다."

은하린
"세 팀이 쓰는 고객 데이터 기준이 달라서, 통합 없이 출시하면 혜택이 중복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정이 필요한 안건입니다."

경현수
"개발팀이 일정상 어렵다고 했잖아요. 출시 후에 보죠."

은하린
"출시 후로 미루시려면, 미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만 회의록에 남겨 두겠습니다. 최소한 중복 적용 차단 로직은 출시 전에 넣는 걸로요."

경현수
"…중복 차단 정도면 개발팀도 할 수 있겠네요. 그건 출시 전에 넣읍시다."

데이터 통합 자체는 여전히 출시 뒤로 밀렸습니다. 하린은 이번에도 맞췄죠. 달라진 건 맞추기 전에 남긴 한 문장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결과 비교

이름 없이 조율안에 녹였을 때

경고는 '추가 검토 사항' 세 번째 줄로 내려갔고, 석 달 뒤 출시 첫 주에 그대로 현실이 됐습니다. 팀장은 그 줄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하린은 말했는데도 말하지 않은 사람이 됐습니다. 조율은 완벽했지만, 조율한 사람의 판단은 기록 어디에도 남지 않았습니다.

내 칸을 남겼을 때

팀장이 직접 중복 차단 로직을 출시 전 일정에 넣었습니다. 이름이 붙고 안건으로 올라간 제안은 첫 반대에 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미뤘을 때의 위험이 기록에 남자 결정권자가 최소한의 대비책을 스스로 골랐습니다. 하린은 여전히 조율자였지만, 이번엔 판단을 가진 조율자로 회의록에 남았습니다.

자리마다 내 칸의 크기가 다르다

상황 CMSN 성향이 미끄러지는 곳 내 칸 남기는 법
1:1상대 원하는 쪽으로 맞추다 내 선호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음"네 쪽으로 맞출게, 다만 나는 원래 ~가 좋았어"
모임총무 역할로 모두의 일정을 맞추다 내 일정이 빠짐후보 날짜에 "내가 안 되는 날"도 같이 표시
회의조율안에서 내 판단이 '추가 검토 사항'으로 내려감"조율 담당 제안" 칸과 결정 요청
단톡방의견 정리 메시지에 내 의견만 빠짐정리 메시지 마지막에 "제 의견은 ~입니다" 한 줄

1:1에서는 내 칸이 아주 작아도 됩니다. 연인이나 친구와 메뉴를 정할 때까지 칸을 만들 필요는 없죠. 다만 늘 맞춰 주는 쪽이 정해져 있다면, 결정은 상대 쪽으로 하더라도 "나는 원래 이쪽이 좋았어" 한 줄은 남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그 한 줄이 쌓이지 않으면, 상대는 내가 원래 아무 선호가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내 칸이 오히려 짐이 되는 경우

조율자가 곧 결정권자일 때는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팀장이 조율을 맡으면서 자기 칸을 먼저 내밀면, 팀원들은 그 칸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의견을 거둡니다. 이럴 땐 다른 칸이 다 채워진 뒤에 마지막으로 내 칸을 여는 편이 낫습니다.

신뢰가 낮은 조직에서는 이름 붙이기가 공 다툼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이름보다 근거를 앞세웁니다. "제 제안"보다 "조율 과정에서 확인된 위험"이라고 부르면, 출처는 남기되 경쟁의 냄새는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의견이 없을 때 억지로 칸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내 칸 남기기는 판단이 있는데도 묻히는 사람을 위한 방법이지, 모든 조율에 내 몫을 끼워 넣으라는 규칙이 아닙니다.

연구의 한계도 짚어 둡니다. 밀리컨 연구팀의 연구는 40명을 인터뷰한 탐색적 연구로, 침묵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그 비율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리슨과 밀리컨의 2000년 논문 역시 개념을 정립한 이론 논문입니다. 그리고 두 연구 모두 아예 말하지 않는 침묵을 다뤘기 때문에, 말은 했지만 묻혀 버린 하린의 경우에 그대로 옮기는 데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CMSN 성향과 가장 가까운 유형, 차이가 큰 유형

가까움 · CQSN 눈치 빠른 해결사

반응 속도만 다른 짝입니다. 둘 다 부드럽게 말하고 그날 안에 맞춥니다. 함께 있으면 갈등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 모두 자기 의견을 가장 먼저 양보하는 습관이 있어서 결정이 둘 중 누구의 뜻도 아닌 쪽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차이 큼 · HMDL 신중한 공감 직설가

듣는 초점, 말하는 방식, 푸는 시점이 모두 반대입니다. CMSN 성향이 그날 안에 조율을 끝내려 할 때, 이 유형은 아직 마음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CMSN 성향의 조율안은 그 '아직'을 동의로 처리하기 쉽고, 상대는 며칠 뒤 정리된 반대를 분명하게 꺼내죠. 두 유형의 충돌은 6장에서 따로 다룹니다.

나는 CMSN 성향일까

진단 결과의 상황별 변화 지도에서 회의 칸의 E축을 확인해 보세요. 회의에서만 S가 강해진다면, 조율자 역할이 내 의견을 감추고 있을 수 있습니다.

APER 진단 시작하기 →

긴급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를 떴을 때, 하린은 혼자 남아 노트북을 닫았습니다. 회의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경 팀장은 문 앞에서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불러 세웠습니다. "다음 조율안부터는, 은 과장 칸 따로 만들어 줘요."

그런데 조율조차 하지 않고 오래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이라면요. 그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변 사람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요.

참고 자료

  • Morrison, E. W., and Milliken, F. J. (2000). Organizational silence: A barrier to change and development in a pluralistic world.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5(4), 706–725. 요약 보기
  • Milliken, F. J., Morrison, E. W., and Hewlin, P. F. (2003). An exploratory study of employee silence: Issues that employees don't communicate upward and why. Journal of Management Studies, 40(6), 1453–1476. 원문 정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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