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CMSL 성향 깊이 생각하는 관찰자, 오래 살피고 돌려 말하며 나중에 꺼내는 성향

APER 대화유형 진단 › 정리가 끝나야 입을 여는 사람들 › 깊이 생각하는 관찰자(CMSL), "속을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때 · 중급

가장 잘 들어 주던 친구가, 어느 날 가장 먼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고민이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늘 정확하게 읽어 줬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죠. 그런데 그 친구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은,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3장의 마지막 유형은 CMSL 성향, 깊이 생각하는 관찰자입니다. 해결부터 보고(C), 오래 정리한 뒤 말하고(M), 돌려 말하고(S), 시간을 두고 꺼내는(L) 사람이죠.

이번 회차의 학습 목표

  • 잘 들어 주는 습관이 관계의 거리를 만드는 구조를 짚는다
  • 자기 공개가 호감과 친밀감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구로 이해한다
  •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조금씩 나누는 1인분 속마음을 익힌다

Ep 12의 조율가가 회의 속에서 자기 의견을 잃었다면, 이번 회차의 관찰자는 가까운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의견이 묻히는 것과 사람이 감춰지는 것은 다른 거리를 만듭니다.

CMSL 성향 깊이 생각하는 관찰자가 잘하는 것

성향 강점
C 내용문제의 핵심을 빠르게 짚는다
M 숙고정리된 말로 신뢰를 준다
S 돌려상대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말한다
L 나중감정이 가라앉은 뒤라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CMSL 성향은 대화 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고, 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으며, 꼭 필요할 때만 조심스럽게 짚어 주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유형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판단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 온 사람이, 자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대가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은 소식

류시온과 인해솔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해솔은 이직, 연애, 결혼 고민까지 큰일이 있을 때마다 시온에게 먼저 연락했죠. 시온은 늘 끝까지 들었고, 해솔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한 문장으로 짚어 줬습니다.

토요일 오후, 다른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해솔은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온이 다음 달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간다는 거였죠. 합격 소식은 이미 두 달 전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둘만 남은 카페에서, 해솔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인해솔
"대학원 얘기, 왜 나한테는 안 했어?"

류시온
"확실해지면 말하려고 했지. 다 정리되고 나서."

인해솔
"나는 너한테 다 말하잖아. 결혼 고민할 때 울면서 전화한 것까지. 근데 넌 네 얘기를 안 하니까… 가끔은 친구가 아니라 상담 선생님 같아."

시온은 대답을 고르느라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이, 해솔에게는 또 하나의 닫힌 문처럼 보였습니다.

"확실해지면 말하려고 했다"가 거리를 만든 이유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친구는 잘 들어 주는 친구라고. 그리고 내 이야기는 확실해진 다음에 해야 괜히 걱정을 끼치지 않는다고요. 시온은 이 두 가지를 10년 동안 성실하게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이 10년을 구조로 펼쳐 보면, 좋은 친구의 조건 두 가지가 겹치면서 하나의 비대칭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첫째, 대화가 늘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오래 정리한 뒤 말하는 M은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듣는 쪽에 섭니다. 상대가 먼저 말하고, 시온은 정리하고, 정리된 한 문장을 돌려주죠. 이 순서가 10년 반복되면서 역할이 굳었습니다. 해솔은 말하는 사람, 시온은 듣는 사람.

한쪽만 말하는 관계에서는 정보도 한쪽으로만 흐릅니다. 시온은 해솔의 10년을 알았지만, 해솔은 시온의 10년을 몰랐습니다.

둘째, 공개가 늘 '다 정해진 뒤'에만 왔다

돌려 말하는 S와 나중에 꺼내는 L이 만나면, 자기 이야기는 결론이 난 뒤에야 나옵니다. 그것도 조용히, 짧게요. 과정은 전부 혼자 감당하고 결과만 전하는 방식이죠.

결과만 듣는 친구는 그 결정에 아무 자리도 갖지 못합니다. 걱정할 기회도, 응원할 기회도, 함께 고민할 기회도 없었죠. 해솔이 서운했던 건 대학원 소식 자체가 아니라, 시온이 두 달 동안 혼자 기뻐하고 혼자 불안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셋째, 정확하게 읽어 줄수록 더 멀게 느껴졌다

해결부터 보는 C의 통찰은 해솔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정확하게 읽어 주면서 자기는 읽히지 않는 사람은, 친구라기보다 전문가처럼 느껴집니다.

해솔의 "상담 선생님 같아"는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나만 속을 다 보여 주고, 상대는 내 속을 다 아는데, 나는 상대를 모른다는 고백이었죠.

속을 꺼낸 쪽이 오히려 덜 가깝게 느낀다

낸시 콜린스와 린 밀러는 1994년, 자기 공개와 호감에 관한 연구들을 모아 메타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세 가지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자기 공개(self-disclosure)

자신의 생각, 감정, 경험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일입니다.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폭)와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하느냐(깊이)로 나눠 봅니다.

확인된 관계 내용
공개하는 사람이 호감을 얻는다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얕게 공개하는 사람보다 더 호감을 얻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공개한다사람들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더 많이 털어놓는다(세 관계 중 가장 강함)
공개한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된다털어놓은 뒤에 그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된다(연구 수가 적어 잠정적)

눈여겨볼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 효과는 처음 만난 사이보다 이미 이어지고 있는 관계에서 가장 강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하느냐를 다룬 연구에서 효과가 더 컸습니다.

수전 스프레처 연구팀은 이 구조를 더 직접적으로 실험했습니다. 처음 만난 두 사람 중 한 명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명은 듣게 했더니, 첫 순서가 끝난 시점에 듣기만 한 쪽이 털어놓은 쪽보다 상대를 더 좋아하고 더 가깝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역할을 바꿔 털어놓았던 쪽이 들을 차례가 되자, 그 차이는 사라졌습니다.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뒤에야 두 사람 모두의 호감이 함께 올라갔죠.

시온과 해솔의 10년은 바로 첫 순서에서 멈춘 실험이었습니다. 시온은 늘 듣는 쪽이었기에 해솔을 가깝게 느꼈습니다. 해솔은 늘 털어놓는 쪽이었기에, 받기만 하고 돌려받지 못한 채 거리를 느꼈고요. 같은 관계를 두 사람이 정반대의 거리로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1인분 속마음,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한 조각씩 나눈다

1인분 속마음은 CMSL 성향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유형에게 그건 맞지 않는 옷입니다. 대신 상대가 무언가를 나눴을 때, 내 쪽에서도 딱 한 사람 몫만큼만 돌려주는 방법입니다.

1인분 속마음의 세 원칙

1.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나눈다 ·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금 고민 중인 것을 꺼낸다
"사실 나도 요즘 퇴사 생각을 하고 있어. 아직 반반이야."

2. 양은 1인분, 깊이는 상대만큼 · 상대가 방금 꺼낸 깊이와 비슷하거나 한 단계 작게 맞춘다
상대가 결혼 고민을 꺼냈다면 내 진로 고민 한 조각, 상대가 점심 메뉴 고민을 꺼냈다면 내 피곤함 한 조각

3. 짧게 나누고 다시 상대에게 돌려준다 · 대화의 주인공을 빼앗지 않는다
"내 얘긴 나중에 더 할게. 너는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첫 번째 원칙이 가장 중요합니다. CMSL 성향은 확실해진 뒤에 말하는 게 배려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의미 있는 건 결과보다 과정입니다. 고민 중이라는 사실을 함께 아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그 결정 안에 자리를 갖게 됩니다.

두 번째 원칙은 콜린스와 밀러의 결과와 닿아 있습니다. 많이 말하는 것보다 깊이를 맞추는 것이 친밀감을 만듭니다. 세 번째 원칙은 듣는 사람으로서의 강점을 지켜 줍니다. 1인분만 나누고 다시 상대에게 자리를 돌려주니까요.

여섯 달 전, 해솔이 결혼 고민으로 울면서 전화했던 밤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인해솔
"나 진짜 이 결혼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 다들 확신이 있다는데 나만 없는 것 같아."

류시온
"확신 없는 게 이상한 게 아니야. 사실 나도 요즘 큰 결정 앞에서 그래. 회사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할까 고민 중인데, 아직 반반이야."

류시온
"내 얘긴 나중에 더 할게. 너는 확신이 없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제일 크게 느껴져?"

인해솔
"…너도 그런 고민 하는구나. 이상하게 그 말 들으니까 좀 덜 무서워."

시온이 나눈 건 두 문장이었습니다. 대화의 주인공은 여전히 해솔이었고, 시온은 여전히 끝까지 들었습니다. 다만 그날 이후 해솔은 시온에게 "그 고민은 어떻게 돼 가?"라고 묻는 사람이 됐습니다.

결과 비교

다 정해진 뒤에 결과만 전했을 때

해솔은 10년 지기의 가장 큰 결정을 다른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시온이 두 달간 혼자 감당한 불안과 기쁨은 해솔에게 하나도 닿지 않았고, 해솔은 자기만 속을 보여 온 관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잘 들어 준 10년이 '상담 선생님'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됐습니다.

과정 한 조각을 나눴을 때

해솔이 "너도 그런 고민 하는구나"라며 오히려 덜 무서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시온의 두 문장이 해솔의 고민을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해솔은 시온의 결정을 함께 지켜보는 사람이 됐고, 대학원 합격 소식은 다른 친구가 아니라 시온 본인에게서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자리마다 1인분의 크기가 다르다

상황 CMSL 성향이 미끄러지는 곳 1인분의 크기
1:1가까운 사람에게도 결과만 통보함진행 중인 고민 한 조각
모임근황 나누는 자리에서 늘 듣기만 해 '조용한 사람'으로 남음요즘 빠져 있는 것 하나
회의관찰한 문제를 혼자 품고 있다가 너무 늦게 꺼냄"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신경 쓰이는 게 있어요"
단톡방읽기만 하고 반응이 없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됨짧은 감상 한 줄

회의에서 1인분 속마음은 다른 모양이 됩니다. CMSL 성향은 회의 중에 가장 먼저 위험을 알아채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확실해질 때까지 말하지 않다 보니, 결국 꺼낼 때는 이미 늦어 있죠.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라는 단서를 붙여 미완성의 관찰을 조금 일찍 꺼내는 것, 그것이 회의실의 1인분입니다.

속마음을 꺼내지 않는 편이 나은 순간

상대가 위기 한가운데 있을 때는 1인분도 많을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잃었거나 큰 사고를 당한 사람 앞에서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는 위로가 아니라 자리 빼앗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럴 땐 온전히 듣는 쪽에 서는 것이 맞습니다.

관계의 깊이와 맞지 않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처음 만난 사이나 위계가 분명한 직장 관계에서 깊은 속마음을 먼저 꺼내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콜린스와 밀러의 분석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서 속을 털어놓은 현장 연구에서는 오히려 호감과 부정적인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지어낸 공개는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상대의 깊이에 맞추려고 없는 고민을 만들어 내면, 그건 속마음이 아니라 연기입니다. 정말 나눌 게 없다면 "나는 요즘 그런 고민은 없는데, 네 얘기 들으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정도면 충분합니다.

연구의 한계도 짚어 둡니다. 콜린스와 밀러의 메타분석은 30년도 더 된 연구들을 묶은 것이고, 공개한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된다는 세 번째 관계는 연구 수가 적어 저자들도 잠정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프레처 연구팀의 실험은 처음 만난 대학생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눈 구조화된 과제였기 때문에, 10년 지기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CMSL 성향과 가장 가까운 유형, 차이가 큰 유형

가까움 · CQSL 가볍게 던지는 재치꾼

반응 속도만 다른 짝입니다. 둘 다 무거운 이야기는 돌려서, 나중에 꺼냅니다. 한쪽은 농담으로, 한쪽은 침묵으로 감추죠. 서로를 편하게 여기지만, 두 사람 모두 속마음을 미루는 탓에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둘 사이에 한 번도 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이 큼 · HMDN 마음을 읽는 통역사

듣는 초점, 말하는 방식, 푸는 시점이 모두 반대입니다. 이 유형은 CMSL 성향의 속을 읽으려 애쓰다 지치고, 결국 "무슨 생각해? 지금 말해 줘"라고 직접 묻습니다. CMSL 성향에게 그 질문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느껴지죠. 두 유형의 충돌은 6장에서 따로 다룹니다.

나는 CMSL 성향일까

진단 결과의 성향별 점수에서 M, S, L이 함께 강하게 나왔는지 확인해 보세요. 세 성향이 모두 강할수록 내 이야기가 늦게, 작게 도착하기 쉽습니다.

APER 진단 시작하기 →

3장에서 만난 네 유형은 모두 정리가 끝나야 입을 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확해서 차갑고, 꼼꼼해서 늦고, 조율하다 사라지고, 들어 주다 멀어졌죠. 다음 장의 네 유형은 정반대입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 그리고 즉시 반응합니다.

느낀 걸 그 자리에서 숨김없이 다 말해 버리는 사람이라면요. 그 솔직함은 언제부터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요.

참고 자료

  • Collins, N. L., and Miller, L. C. (1994). Self-disclosure and liking: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16(3), 457–475. 원문 보기
  • Sprecher, S., Treger, S., and Wondra, J. D. (2013). Effects of self-disclosure role on liking, closeness, and other impressions in get-acquainted interactions.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30(4). 원문 정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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