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4. 그대로 말하는 사람과 돌려 말하는 사람, D 성향과 S 성향이 엇갈리는 지점과 세기 눈금 달기

APER 대화유형 진단 › 두 사람의 글자가 부딪칠 때 › D 성향과 S 성향, 세게 들린 말과 묻혀 버린 부탁 · 실전

"말을 하지 그랬어." "몇 번이나 했어." 1년을 함께 산 룸메이트의 마지막 대화는 이 두 문장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정말로 여러 번 말했습니다. 둘 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맞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이 같은 언어의 서로 다른 세기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회차는 말하는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의 충돌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하는 D 성향과, 상대와 분위기를 보며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S 성향이죠. D 성향의 가벼운 한마디는 S 성향에게 무겁게 떨어지고, S 성향의 무거운 부탁은 D 성향에게 가볍게 스쳐 갑니다.

이번 회차의 학습 목표

  • 같은 부탁이 D 성향과 S 성향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세기로 전달되는 구조를 짚는다
  • 사람은 자기 말이 얼마나 세게 들리는지 잘 모른다는 연구를 이해한다
  • 부탁과 의견에 세기를 숫자로 붙이는 세기 눈금 달기를 익힌다

Ep 23에서 두 사람은 대답의 속도를 맞췄습니다. 이번에는 속도가 같아도 말의 모양이 다를 때입니다. Ep 03이 말하는 방식(E축)을 한 사람의 습관으로 해부했다면, 이번 회차는 그 축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어떤 무게로 받는지를 다룹니다.

세 번의 힌트, 한 번의 직구

옥서진과 위다솜은 대학 동기로, 졸업 후 투룸 아파트를 함께 빌려 1년째 살고 있었습니다. 서진은 해외 지사와 일하느라 밤 11시 넘어 화상 회의를 자주 했죠. 방 사이 벽은 얇았습니다.

다솜은 세 번 말했습니다. 한 번은 아침 식탁에서 "요즘 밤에 잠이 좀 늦게 드네, ㅎㅎ", 한 번은 "이 집 벽이 생각보다 얇은 것 같아", 또 한 번은 귀마개 사진을 보내며 "이거 좋더라". 서진의 반응은 매번 비슷했습니다.

옥서진
"그치, 이 집 벽 진짜 얇아. 나도 윗집 발소리 다 들려. 귀마개 괜찮네, 나도 하나 살까?"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싱크대 앞에서 서진이 말했습니다.

옥서진
"다솜아, 설거지 먹고 바로 좀 해 줘. 이틀 두니까 냄새나더라."

위다솜
"…응, 미안."

서진에게 그건 지나가는 한마디였습니다. 말하고 나서 바로 휴대전화를 보며 저녁 메뉴를 골랐죠. 다솜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습니다. 회의 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몇 달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서진은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구나.'

두 달 뒤, 다솜은 계약 만료에 맞춰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서진에게 처음으로 밤의 회의 소리를 이야기했죠. 그리고 그 두 문장이 오갔습니다.

"좋게 말하면 알아듣겠지"는 왜 빗나갔을까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사는 사이일수록 좋게, 돌려서 말해야 한다고.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도 말하죠. 할 말은 그때그때 솔직하게 해야 쌓이지 않는다고요. 다솜은 앞의 조언을, 서진은 뒤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두 조언 모두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두 조언이 한 집에서 만났다는 데 있습니다. 대화 구조로 보면 세 가지 어긋남이 겹쳐 있었습니다.

첫째, 같은 부탁이 서로 다른 세기로 포장됐다

다솜의 마음속에서 밤 회의 문제는 '꼭 바뀌었으면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돌려 말하는 S 성향의 포장을 거치자 "ㅎㅎ"와 "~같아"가 붙은 잡담이 됐죠. 반대로 서진의 설거지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해 주면 좋은 일' 정도였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는 D 성향의 문장에는 완충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거운 부탁은 가볍게 포장되고, 가벼운 부탁은 날것으로 나갔습니다.

둘째, 받는 쪽은 자기 방식의 눈금으로 읽었다

D 성향의 서진은 '진짜 중요한 일이면 직접 말하겠지'라는 눈금으로 다솜의 힌트를 읽었고, 그래서 잡담으로 받았습니다. S 성향의 다솜은 '이렇게 직접 말할 정도면 정말 화가 난 거다'라는 눈금으로 서진의 한마디를 읽었고, 그래서 공격으로 받았습니다. 각자 자기가 말할 때 쓰는 눈금을 상대의 말에 그대로 대 본 겁니다.

셋째, 보이지 않는 장부가 불공평하게 기울었다

다솜의 장부에는 '나는 세 번이나 조심스럽게 말했다'와 '서진은 대놓고 지적했다'가 나란히 적혔습니다. 서진의 장부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죠. 서진은 부탁을 받은 적이 없고, 자기는 그저 설거지 이야기를 한 번 했을 뿐이니까요. 한쪽만 기록하는 장부는 언젠가 한꺼번에 정산됩니다. 이 집에서는 그것이 이사 통보였습니다.

자기 말의 세기는 자기에게 가장 안 보인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대니얼 에임스와 애비 와즐로웩은 2014년, 사람들이 자기 말이 얼마나 강하게 들리는지를 얼마나 정확히 아는지 실험했습니다. MBA 학생들을 짝지어 모의 협상을 하게 한 뒤, 자신과 상대의 단호함을 평가하게 하고, 상대가 자기를 어떻게 평가했을지도 추측하게 했죠.

대인 단호함(interpersonal assertiveness)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입장과 이익을 얼마나 강하게 내세우는지를 뜻합니다. 너무 약하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너무 강하면 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적정한 선이 중요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한 연구에서 상대에게 너무 약하게 보인 사람의 57%가 자신이 적당하거나 오히려 강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강하게 보인 사람의 56%는 자신이 적당하거나 약했다고 생각했죠. 자기 단호함이 잘못 전달된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아챌 확률은 동전 던지기와 비슷했습니다.

선 넘기 착각(line crossing illusion)

상대에게는 적절하게 보였는데도 정작 본인은 '내가 선을 넘었다', '너무 세게 말했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연구진은 이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관계를 수습하려고 이후 협상에서 불필요하게 양보하는 경향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런 양보를 망가지지도 않은 것을 고치느라 치른 비싼 수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연구는 D 성향과 S 성향 양쪽에 거울을 들이댑니다. S 성향의 다솜이 "ㅎㅎ"를 붙이고 "~같아"로 흐린 건, 직접 말하면 선을 넘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대로라면 그 두려움은 생각보다 자주 착각입니다. 반대로 D 성향의 서진은 자기 한마디가 다솜에게 얼마나 세게 떨어졌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도 연구가 보여 준 그대로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말의 세기를 보지 못한 채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세기 눈금 달기, 말의 무게를 숫자로 붙인다

자기 말의 세기를 스스로 잘 모른다면, 해법은 세기를 말 안에 직접 적어 넣는 것입니다. 세기 눈금 달기는 두 사람이 1부터 5까지의 눈금을 함께 정해 두고, 부탁이나 의견에 그 숫자를 붙여 말하는 기법입니다. 1은 '그냥 해 본 말', 5는 '꼭 바뀌어야 하는 일'입니다.

세기 눈금 달기의 세 요소

1. 보내는 쪽이 눈금을 붙인다 · S 성향은 힌트에, D 성향은 직구에 숫자를 붙여 실제 무게를 알린다
(S) "이건 4짜리 부탁이야. 밤 11시 넘어 회의할 땐 거실에서 해 줄 수 있어?" (D) "이건 2짜리야. 설거지, 가능하면 그날 해 주면 좋겠어."

2. 받는 쪽이 눈금을 묻는다 · 숫자가 없는 말이 애매하게 들리면 먼저 물어본다
"방금 그거 몇짜리야?"

3. 들린 눈금을 돌려준다 · 말한 세기와 들린 세기가 다르면 그 차이를 알려 준다
"너는 2라고 했는데, 나한테는 4쯤으로 들렸어."

첫 번째 요소는 첫째 함정, 무게가 엉뚱하게 포장되는 것을 막습니다. S 성향은 부드러운 말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숫자로 무게를 지킬 수 있고, D 성향은 직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숫자로 무게를 덜어 낼 수 있죠. 말투를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째 요소가 연구와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동전 던지기 수준으로만 압니다. 그렇다면 들은 사람이 알려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한테는 4로 들렸어"라는 한 문장이, 혼자서는 보이지 않는 자기 말의 세기를 비춰 주는 거울이 됩니다.

두 사람이 이 눈금을 정해 둔 뒤라면, 그 집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위다솜
"서진아, 이건 4짜리 부탁이야. 밤 11시 넘어 회의할 때는 거실에서 해 줄 수 있어? 벽이 얇아서 잠이 자꾸 깨."

옥서진
"헉, 4짜리였어? 몰랐어. 미안. 오늘부터 거실에서 이어폰 끼고 할게. 혹시 전에도 말했었어?"

위다솜
"벽 얇다고 몇 번 얘기했는데, 내가 너무 돌려 말했던 것 같아."

옥서진
"아, 그게 그 얘기였구나. 그리고 나 지난번 설거지 얘기, 그건 2짜리였어."

위다솜
"솔직히 나한텐 4쯤으로 들렸어. 그래도 2라니까 마음이 좀 놓인다."

결과 비교

각자의 방식으로만 말했을 때

다솜의 4짜리 부탁은 세 번 모두 잡담으로 흘러갔고, 서진의 2짜리 한마디는 공격으로 박혔습니다. 다솜의 장부에만 불공평함이 쌓였고, 두 달 뒤 그 장부는 이사 통보로 한꺼번에 정산됐습니다. 서진은 마지막 날까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몰랐습니다.

눈금을 달았을 때

서진이 그날 바로 회의 장소를 바꾸겠다고 나섰고, 이전 힌트들이 무슨 뜻이었는지도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4라는 숫자가 부드러운 말투 속에서도 무게를 지켜 줬기 때문입니다. 다솜도 "4로 들렸어"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설거지 한마디를 혼자 곱씹는 대신 그 자리에서 무게를 내려놓았습니다.

관계마다 눈금을 쓰는 방식이 다르다

관계 D와 S가 엇갈리는 곳 눈금 다는 법
친구·룸메이트생활 규칙 부탁이 잡담과 지적으로 엇갈림1~5 숫자를 그대로
연인·부부"괜찮아~"와 "그건 아니지"의 무게 착각둘만의 표현으로 바꾸기 ("이건 진심 버전")
상사와 팀원상사의 의견이 지시로, 팀원의 우려가 동의로 들림"이건 제안이에요", "이건 꼭 반영돼야 해요"
거래 상대완곡한 거절이 협상 여지로 읽힘"이 조건은 조정이 불가합니다"로 등급 명시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는 눈금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립니다. 윗사람의 말은 숫자가 없어도 저절로 한두 칸 무겁게 들리고, 아랫사람의 말은 한두 칸 가볍게 들리죠. 그래서 상사는 자기 말에 낮은 눈금을 일부러 붙여 주고, 팀원은 꼭 필요한 우려에 높은 눈금을 분명히 붙여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숫자 대신 '제안', '요청', '필수' 같은 등급 단어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눈금이 오히려 해가 되는 순간

모든 말에 숫자를 붙일 때는 대화가 점수표가 됩니다. 눈금은 부탁과 의견, 그중에서도 엇갈린 적이 있는 주제에만 붙입니다. 일상의 잡담까지 "이건 1짜리 얘기야"라고 말하면 오히려 거리감이 생깁니다.

눈금이 면죄부가 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D 성향이 날카로운 말을 해 놓고 "그건 1짜리였어"라고 덧붙이면, 상처를 숫자로 지우려는 것처럼 들립니다. 눈금은 말의 무게를 알리는 장치이지, 말투의 책임을 덜어 주는 장치가 아닙니다.

숫자 인플레이션도 생길 수 있습니다. 무시당한 경험이 쌓이면 S 성향은 3짜리 일도 5로 부르기 시작하고, 그러면 눈금은 금세 의미를 잃습니다. 5는 정말로 드물게, 관계가 걸린 일에만 씁니다.

연구의 범위도 짚어 둡니다. 에임스와 와즐로웩의 연구는 주로 MBA 학생들의 모의 협상과 미국 성인 대상 설문에서 얻은 결과이며, 친구나 룸메이트처럼 오래 함께 지내는 관계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세기 눈금 달기는 그 연구가 보여 준 자기 인식의 한계를 대화 구조에 적용한 이 채널의 설계입니다.

우리는 같은 세기로 말할까

자주 서운해지는 사람과 함께 진단해 보고, 두 사람의 말하는 방식이 D와 S로 갈리는지 확인해 보세요. 두 사람의 결과에서 말하는 방식 축부터 나란히 놓고 보면 됩니다.

APER 진단 시작하기 →

그날 밤 11시 20분. 노트북과 이어폰을 챙겨 거실로 나가는 서진의 뒷모습 너머로, 다솜의 방문이 조용히 닫혔습니다. 냉장고 문에는 손글씨 메모 한 장이 자석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1 그냥 / 3 부탁 / 5 꼭'.

그런데 세기는 맞췄는데, 이번에는 푸는 시점이 다르다면요. 한 사람은 오늘 밤 안에 풀고 자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며칠이 지나야 말할 수 있다면, 그 며칠 동안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참고 자료

  • Ames, D. R., and Wazlawek, A. S. (2014). Pushing in the dark: Causes and consequences of limited self-awareness for interpersonal assertivenes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0(6), 775. 논문 정보 보기
  • ScienceDaily (2014). 대인 단호함의 자기 인식 연구 소개 기사. 기사 보기
 

애드센스 본문 상단

본문 중간 연관 글

애드센스 본문 중단

상황별 aper 진단도구

연관글 목록

팔로어